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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상

좀 느려도 괜찮아?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나친 이상주의자

by 이선하

온의 위클래스와 연계된 부모상담 4회차 중 어느덧 마지막 회기였다.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 속에(어째서인지 퇴사 후가 더 바쁘다.) 어거지로 시간을 조율하느라 살짝 귀찮았던 초반과 달리, 내 또래로 보이는 선생과 일대일로 대화할 수 있었던 내 일상 중 몇 안 되는 귀한 시간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남들이 보는 내 모습과 내가 바라는 내 모습 등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도 성찰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매일 일기를 써서 그나마 고민할 시간이 10분 남짓에 그친 건지, 나 자신을 기술하는 일이 그렇게 버거웠다. 장점은 세 가지도 다 채우지 못했다(달리 말하자면, 내 장점이 무려 두 가지나 됐다!).

좋아하는 것들 중에 '글쓰기'를 적다가, 나도 모르게 브런치스토리 작가임을 고백했다. 선생이 계정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적나라하고 허점 투성이인 단상집들을 지인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내 장점을 자랑처럼 내보이던 시절이 있긴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 부끄럽다. 이건 낮은 자존감도, 겸손의 미덕도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가 부끄럽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이해받고 싶고, 나아가서는 아낌을 받고 싶다. 이렇듯 두 모순된 마음이 서로 부딪혀 어지럽다. 어쩌면 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나친 이상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건넬 격려 한 줄을 적으라는 지문에 나는 이렇게 썼다. "좀 느려도 괜찮아." 기술하면서도 내심 뜨끔했다. 정말 이게 맞아? 생계가 위태롭다 못해 무너질 지경인데, 여기서 더 느려도 괜찮은 게 맞아?

그렇다 한들, 느리든 불안하든 싫든 좋든 결국은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퇴로도, 더 이상의 우회로도 없다. 멈추는 순간 정말로 다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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