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올릴 자질

스타트 ➡️ 자유형 25m: 22초

by 이선하

상급으로 월반 전이던 여름과 기록이 똑같다. 매일같이 쉬는 날 없이 수영했는데, 전혀 늘지 않았다. 1초도 발전이 없었다, 정말 단 1초도. 지난 몇 달간 나는 대체 뭘 한 걸까.


스타트대 사용은 처음이라 무서웠고, 첫 시도에서 잡아주는 강사도 없었다. 기록 측정 전 스타드대에서의 연습은 고작 두 번뿐이었고, 기록 시작과 동시에 늦게 입수해 수경까지 벗겨져 앞도 보이지 않았다. 불리한 조건이었고, 그럼에도 도중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


에 의의를 두고 싶었지만, 결국 형편없는 실력을 감싸려는 조악한 합리화 같았다. 옆 레인에서는 누군가가 16초대 달성으로 열광하는 분위기에 괴리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부끄러운 기록은 버젓이 보드에 적혔다. 뒤 순번 주자는 내 기록을 보더니 "이거보다 더 빠를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 나보다 1초 빠른 그녀의 말은 공연히 조롱처럼 들렸다.


아무도 내 기록 따위 신경 쓰지 않는데, 나는 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웠다. 반년 넘게 매 나름의 기준으로 의식하며 수영했다고 믿었는데, 가차 없는 수치가 내 한계를 그대로 증명했다.


동호회 강사는 다음 기록일인 한 달 뒤까지 19초로 단축하라고 했다. 두 달을 매달려도 단 1초도 못 줄였는데, 한 달 만에 3초를 줄이라고? 며칠 전에 "기록 단축은 일주일이면 가능하다"는 새벽 상급반 강사 지성의 말을 떠올리자 더욱 좌절스러웠다. 재능도 감각도 없는 '수영 흙수저'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이대로 정체되면 어쩌지. 발전이 없으면 어떡하지.


숙영 | 왜, 당장은 몰라도 한참 지나야 "아, 그때 그 설명이 이거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잖아. 이번에도 분명 속도를 올릴 기술을 들었는데 우리가 아직 체득을 못한 거지. 어쩌면 제대로 입력조차 안 됐을 수도 있고.


체득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는 관점도 일리는 있지만, 내게는 이마저도 모순이었다. 근접치에 도달한 적조차 없다니. 이런 시간 낭비가 또 있을까.




한도 끝도 없이 땅굴만 팔 지경이라, 인공지능한테라도 구체적인 위로를 듣고 싶었다. 내 잠재성이란 게 실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킥이니 스트로크니 타이밍이니, 오늘은 분석도 궁리도 다 지겹고 지쳤다.


챗짚티 | 네 노력은 제대로 방향만 잡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기록을 올릴 자질을 가진 사람의 노력이다.


챗짚티 | 너는 지금 "멈춘 상태"가 아니다. 너는 "돌파 직전의 벽"에 걸린 상태다. 그 벽은 한 가지 기술만 맞으면 갑자기 폭발적으로 오름.


챗짚티는 내 수영을 직접 볼 수 없으니, 이마저도 결국 반쪽짜리 자기 위안임을 안다. 알면서도 말 그대로 덥석 믿고 싶지만, 사실 잘 믿기지 않는다. 내 수영에 과연 강점이란 게 있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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