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스컬링
뒤로 가는 스컬링 드릴을 배울 때였다.
아무리 손짓을 해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르는 내게 사람들은 몸소 알려주고, 내 질문에 답하고,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나만 진전하지 못했다, 나만.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해도 체득되지 않았다. 강습이 끝나고, 다음 타임이 시작되기 전 10분 내내 씨름했지만 끝끝내 해내지 못했다.
누구는 낄낄대며 밀어주고, 누구는 왜 앞으로는 가면서 뒤로는 못 가냐고 낄낄댔다. 모두 악의는 없었겠지만 나는 어쩐지 모멸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만치 멀리 가 있는데 나만 혼자 제자리였다, 나만.
5월에 처음 배운 평영킥 이후로 일곱 달 만이었다.
그나마 평영킥은 방향이 ‘앞으로’였으니 퇴근 후에 공립수영장에서 따로 연습할 수나 있었지, 뒤로 가는 스컬링은 자유 없는 자유 수영인 공립수영장에서 어림도 없다.
가타부타 구차한 잡설의 근원은 30년 가까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척집을 전전하던 유년기에, 외사촌 언니를 따라다니던 공립기관에서 발레와 수영을 배웠다.
당시의 어렴풋한 기억 중에 유일하게, 발레 선생은 나더러 악을 쓰며 나가라고 내쫓던 순간 또래 아이들은 낄낄대며 웃어대던 장면만 또렷하다. 나를 돌봐줄 다른 어른이 없었기에, 발레 수업 내내 교실 밖 차가운 외벽에 기대어 혼자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언니가 예쁜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 서던 발표회 날까지, 나만 설 수 없던 그 무대를 강제로 관람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나는 ‘망신살’이라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 됐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한동안 공연계에 발을 들일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누구도 망신을 좋아하진 않겠지만, 나는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도 울컥하니 말이다.
그까짓 거 못할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는데. 아등바등 기를 쓰는 내 꼴이 남들 보기엔 그저 우스울 수도 있는데. 누구 말마따나 선수할 것도 아닌데, 나는 자꾸만 기가 죽어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무 못해서 아니꼬워 보일까. 그래서 뻔히 뒤처지는데도 유독 강사는 내게만 피드백을 안 준 채 내버려두는 걸까. 다 큰 성인한테 고함을 칠 수는 없으니 아예 그냥 포기해 버렸을까.
필요 이상으로 과이입해봤자 결국 나만 손해임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여섯 살 배기인 채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도, 내 수영은 결국 나아가지 못했다.
기실 내 안의 공포는 사람들의 조롱보다도, 나 혼자 남겨진다는 사실이었다. 나 혼자 남겨진 제자리라는 사실이 못 견디게 두려웠다.
비단 스컬링만 못하는 게 아닌 허점 투성이임에도 새삼스러웠다.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그저 그런 단순한 해프닝일 뿐인데, 오래 묵은 역린이 건드려져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내 수영은 마침내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러지 못해도 내 수영만큼은 제자리를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