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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Feb 07. 2021

웃음거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icture by. Cdd20 / Pixabay


    벌써  달이 지난 어느 겨울이었다. 계기는 하찮도록 사소했으나 그런 사소함이 점차 누적되어  데까지 갔음을  역시 암묵적으로 느꼈을 터였다. 서로 간에 멀어진 거리를 좁히고자 적어도  나름대론 적잖은 노력을 해왔지만 그가 이런저런 망발을 서슴없이 지껄 당시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던 까닭은 실로 명쾌한 깨달음에서였다. 드디어 내게 오만정이  떨어졌나 보구나. 이제야 나를 향한 자신의 본심을 자각했구나. 그러한들 어차피 진작에 무뎌진 가슴이니  타격이 없으리라고, 착각했다.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던 도미노가 툭 손짓 하나로 줄지어 쓰러지듯이, 작은 소리가 기나긴 정적을 깨뜨리듯이 분노는 어느 순간 들불같이 일었다. 꼴 보기 싫은 모든 흔적들은 닥치는 대로 종량제 봉투 안에 팍팍 쓸어 담아 꽁꽁 묶어버리고 한데 쌓아 모았다. 그렇게 스무 봉지가 채 안 됐다. 화풀이는 딱 거기까지로 끝낼 참이었다.


    애써 추스르던 중에 태평하기 짝이 없는 낯짝을 마주하자니 불과 몇 시간 전에 내 등에다 대고 퍼부운 악담 몇 마디가 다시금 귓전을 때리며 울컥했다. 갈 곳을 잃은 수년에 걸친 설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체면과 맞바꿔 미친 듯이 발악해댔다. 비닐봉지마다 질질 끌고 나와 수거함에다 모조리 던져버렸다. 그 서슬에 비닐이 터져 내용물 토해내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다. 내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터져버렸거든.


    양손 가득 쥐어 든 봉지들을 갖다 버리러 수차례 드나들었다. 번번이 신발을 찾아 신기가 귀찮아 엄동설한에 맨발 바람이었다. 주체 못 할 분노 앞에서 그까짓 발밑에 차갑고 찝찝한 감각 따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면전에 대고 고래고래 악다구니 쓰든지 말든지 그 태평한 인사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자신의 짐을 말없이 주섬주섬 챙기는 모습을 보며 화가 가라앉기는커녕 드세졌다.


    아무리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만 타인의 눈엔 나의 그 꼴이 퍽 우스웠나 보다. 어머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어느 같잖은 노인의 한 마디에 반절은 풀어헤친 이성의 끈을 마저 놓칠 뻔했다. 누가 봐도 악에 받친 이에게 들으란 듯 조소 섞인 오지랖이라니. 눈이 돌아가 봤자 고작 조그마한 계집애가 감히 노인을 상대로 뭘 어쩌겠냐는 오만한 발상에서 기인한 걸까.


    엉뚱한 데다 화풀이할 충동을 간신히 붙들었으나, 뒤늦게 떠올리자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비록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언행이었지만. 참다못해 터져 나온 유일의 분노마저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스스로가 이토록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임을 자각하니 그저 허탈했다.


    사태의 결말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웅크려 누운 채 중얼거리는 자조 섞인 혼잣말이었다. 빌어먹, 체력으로나 시간으로나 낭비뿐인 소모였어. 하던 대로 국으로 입 처닫고 가만히 있을 걸. 각 잡고 성질내 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비교적 침착하게 일단락을 지었다. 서로 사적인 개입 없이 그저 공동책임에만 상호 협력하기로. 그러나 겉보기엔 이상적인 형태로 갈무리했음에도 여전히, 그에겐 희미해진 과거의 대과거조차 내게는 현재 진행 중인 것이다.


   그때마다 저번과 같은 추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마음속 매듭을 단단히 묶고 또 묶었다. 그러다 보면 못 견디도록 가벼운 존재감에 조금은 무게가 실리지 않을까, 하는 비교적 하찮은 바람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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