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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Feb 13. 2021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2.

줄담배의 의미.

Picture by.  Cdd20  / Pixabay


    그와 그녀는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 여행지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따뜻한 남쪽 섬이었다. 첫날밤에 그는 고민 끝에 꼭 해줄 말이 있다며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곧이어 아이는 꼭 하나만 낳아서 온전한 사랑을 주자고 했다. 그녀는 별스럽다 여기면서도 선뜻 그러자고 했다.


    다음 날 그들은 유명 사찰에 들렀다. 그녀는 딸이든 아들이든 예쁜 아이를 낳고 싶지만 노산이라 덜컥 겁이 난다는 고민을 끝내 말하지 않고 그저 불상 앞에 기도를 올렸다. 얼마  그녀는 임신했고 다음 해 겨울에 딸을 낳았다. 35년 전의 그녀를 쏙 빼닮은 방지거 설까치가 앙앙 울었다.


    그는 느지막이 얻은 딸에 내심 신이 났다. 오죽하면 태명부터 '신나라'였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의 딸 사랑은 끔찍했다.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 승진 시험공부를 할 만큼, 딸이 태어난 날짜의 달력을 떼어다 접착 앨범에 붙일 만큼, 아기의 유년시절을 필름 카메라로 수백 장씩 찍어댈 만큼. 이미 조카딸을 셋이나 보았지만 그의 눈엔 자신의 딸이 가장 예뻤다.


    그가 직장에 가있는 하루 종일 그녀는 갓난쟁이를 어르며 창문 너머 강변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내내 공부하거나 가르치며 살아온 그녀는 기나긴 휴가에 적잖이 당황했다. 벌이와 육아서적으로 부모가 될 마음 준비 덜 된 까닭이다. 가녀린 아가의 바동거리는 몸짓마다 쩔쩔맸고 쉴 새 없는 옹알이마다 뭐라고 대꾸할지 몰랐다. 그녀는 카세트에 동요 테이프를 트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쏟 다행히도 흐릿했던 일상은 점차 뚜렷해졌다. 딸이 태어난 지 3년 후에 그녀는 복직했다.


    신혼집에 집들이 차 방문했던 그의 직장동료는 그가 한눈 판 사이 그녀에게 농담인지 취중진담인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 저런 사람이랑 결혼까지 했어요?" 취기에 풀린 눈 속에 담긴 그녀의 표정엔 의아함과 다소 노여움마저 서렸다. 남의 집에 대접까지 받고선 한다는 소리가 뭐 저래? 그러나 그 말뜻을 이해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제할 때 손수 스테이크를 썰어주던 자상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말수가 그리 적지 않은 줄로만 알았던 그는 실로 표현에 인색한 남자였다.


    그의 성정은 그의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그의 형이 함께 살던 노부모를 따로 모실 단독주택을 구할 때, 형제끼리 돈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을 피하고 싶던 그녀의 제안으로 그와 그녀가 비용을 전담했다. 비용 마련을 위해 신혼집 40평 아파트를 처분했다. 형 부부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정작 그는 아무 반응 없었다. 시부모를 단독주택에 모신 후 가족 외식에서 거리낌 없이 오가는 그의 첫사랑 얘기에 머쓱해진 그녀는 자뭇 살가운 표정으로 "그래도 이제 제가 며느리로 와서 다행이시죠?"라고 묻자 시모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걸 어떻게 아누?"


    40평 아파트는 결코 적은 재산이 아니었음에도 예상보다 쌀쌀맞은 반응에 서운했다. 집에 돌아온 그녀가 심정을 내색하자 도리어 그는 내게 이러지 말고 직접 말하라며 짜증을 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병역기피자로 만들 만큼 장남과 떨어져 살기 싫었던 시모비롯해 주변 정황을 비로소 납득했지만,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덧 그녀의 나이 마흔을 넘겼다. 그전까지 좀 떼쓰는 일이 없었던 딸은 미운 7살이 되자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동생을 달라 떼를 썼다.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임신했다. 둘째도 딸이었다. 큰딸을 임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얼떨결에 가졌다. 내심 두려웠어도 이 나이에 태동을 느낄 수 있다는 설렘이 앞섰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 늦둥이 소식을 전하니 그는 반색은커녕 아무 말 없이 줄담배만 왕창 피워댔다. 당시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서러웠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줄담배의미를 이해하게  것이다. 그것은 향후 휘몰아칠 폭풍의 전조였으리라는 그녀의 짐작은 아마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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