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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Feb 16. 2021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5.

재회.

Picture by. Cdd20 / Pixabay

 

   처음에 그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며칠 잠적하다 돌아온 전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성인 남성이 제 발로 걸어 나갔기에 실종이 아닌 가출로만 신고할 수 있었다.  없는 말이 온 동네 곳곳에 퍼졌다. 사정을 모르는 오지랖들이 심심한 아가리를 놀려 그녀의 속을 들쑤셨다, 여자가 얼마나 바가지를 긁었으면 제 발로 걸어 나갔대?  


    아내가, 딸이, 장모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그는 받지 않았다. 이제 식구들은 몸소 발품을 팔았다. 한여름에 노쇠한 장모와 장인은 주변을 수소문해 거동도 불편한 몸을 이끌며 사위를 찾아 나섰다. 늦가을에 큰딸은 답장 없는 문자와 받지 않는 전화를 수시로 보내며 어른들이 수소문했다는 장소를 찾아 헤맸다. 초겨울에 그녀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큰딸의 명의로 된 그의 휴대폰을 분실 신고해 위치 추적을 시도했다. 동시에 메시지가 전송되자마자 그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려 두 번 다시 켜지 않았다.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2년 뒤 어느 날, 그녀에게 공중전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였다. 근황을 간략하게 전할 뿐 소재지를 재차 물어도 두루뭉술 얼버무렸다. 주변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그와의 연락은 완전히 두절됐다. 그  디디면 깨질 살얼음판이자 팔 뻗으 소용돌이에 휩쓸릴 태풍의 눈 섰다. 정확히는 강제로 떠밀려 섰다. 이따금 질주하는 차 속으로 뛰어들어 죽고 싶었다. 그때마다 흐리멍덩한 심중에서 어린 자매가 선연해졌다.   위해서라도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자신의 부모처럼 미우나 고우나 그가 곁이라도 지켜주길 바랐다. 그녀는 계속해서 속절없이 그를 기다렸다.


    7년의 세월 동안 다사다난했다. 한 해는 그녀가, 한 해는 큰딸이, 한 해는 작은딸이 돌아가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반쯤 넋이 나간 그녀의 바로 눈앞에서 작은딸이 심한 부상을 입으며 마음속 흉터가 가시화됐다. 죄책감 위로 바가 얹역설적이게도 희미해진 일상은 점차 선명해졌다. 작은딸의 몸은 상흔이 남도록 출혈했고, 그녀는 수혈받 자리로 상흔이 새겨졌다. 그럼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두 딸을 데리고 오랫동안 살아온 친정 동네를 떠났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위해서라도 살 싶었다. 이대로 상실감과 허무에 주저앉아 허송세월 할 순 없었다.


    큰딸은 겨우 안정을 찾는가 싶더니 헐레벌떡 시집을 갔다. 큰딸의 결혼식장에서 여태껏 절친한테도 말하지 않은 그녀의 비밀이 공개됐다. 신부 아버지 자리가 공석이지만 누구 하나 사연을 묻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는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부질없이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셋째를 임신 중인 큰딸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형사였다. 형사는 그에게 큰딸의 연락처와 근황을 전했다. 온 가족이 수년간 애타게 찾았어도 연락 한 번 닿지 못했는데 고작 운전면허 갱신으로 덜미를 잡았다니 큰딸은 허탈했다. 곧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자 심장이 철렁했다. 그가 가족을 떠난 9년은 강산도 변할 간극이 이미 친정에서 그는 언급조차 기피 대상이었다. 큰딸 역시 내키진 않았지만 숫제 호기심이 앞질렀다. 그 역시 존재조차 몰랐던 손주들이 궁금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큰딸과 그는 재회했다. 그는 전보다 변했다. 주름은 깊어졌고 남은 아랫니가 몇 없어 틀니를 꼈다. 그리고 전과 변함없이 말이 없었다. 큰딸은 전과 많은 게 달라졌다. 원숙해진 얼굴, 분위기, 말투, 그리고 아직 대학생일 나이에 무릎 위 어린 자매가 앉다. 큰딸은 막상 그를 마주하니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할 말도 없었다. 혼자서 딸들의 입  음식을 넣어주기 바빴다. 그는 어색함에 종종 쥐어짜듯 입을 열었다.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관전하다 허겁지겁 돌아온 사위가 자신의 족보를 줄줄 읊으며 큰절을 올리자 초면에 꺼낸 그의 한 마디는 가히 가관이었다, "내가 있었으면 이 결혼 반대했을 걸세."


    큰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뒤통수를 씨-게 얻어맞듯 입이 떡 벌어졌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영부영 자리를 파하고 뒤늦게서야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게 당신 입으로 할 소리냐고 쏘아붙여도 됐을 법한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이 미치자 종종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그녀의 잔소리가 떠오르는 것이다.


    '넌 가끔 보면 애가 너무 어수룩해' 내지는, '넌 너무 정이 많아서 탈이야.'  그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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