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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Feb 18. 2021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6. (최종)

나의 이야기.

Picture by. Cdd20 / Pixabay


    이후 큰딸은 그와 종종 연락했다. 그는 늘 처자식에게 미안하다면서 큰딸을 비롯해 그녀와 작은딸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큰딸 역시 딱히 이제 와서 아비의 정을 바라지 않았다. 반 오십이 넘도록 의사표현이 서투른 반푼인 데다 성정이 모질지 못한 대신, 그에게서 얻을 두 가지의 이득을 철저히 했다. 하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 등 기동력이 급할 때. 다른 하나는 장녀로서 그의 생사라도 파악해둘 필요성이었다. 그녀의 대출금은 청산했어도 그에게 남은 빚이 얼마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집을 떠난 10년 전 그녀한테도 그래 왔듯 소득과 거취 등 자신의 현황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현행법상 부모의 빚은 사망한 지 3개월이 지나면 상속포기가 불가했다. 부모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자식에게 의무를 강제하는 참으로 엿같은 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섣불리 밝혔다간 도로 잠적할 게 뻔하므로 입을 다무는 것 말곤 별도리가 없었다. 그의 복장은 제법 번듯했어도 환갑이 넘도록 수차례 거취를 옮기며 자기 명의의 핸드폰과 신용카드를 소지하지 않았다. 신용이 보증되지 않았단 방증이면서 동시에 그에게 명의를 빌려준 이와는 어떤 관계인지 오리무중이었다. 수상쩍은 만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큰딸로선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에게 딸의 지난 7년간의 근황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마찬가지로 큰딸 역시 상상도 못 한 그의 언행에 혀를 내두를 만큼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네가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을 관뒀을 줄 몰랐다는 안타까움과(누구 때문에 그만뒀는데?), 차명계좌 개설 및 처남과의 만남을 그녀 모르게 주선해달라는 요구와, 자꾸 자리를 피하는 사위에게 자신은 아직 무시받을 정도가 아니라는 주장은 그나마 약과였다.


    둘째 외손녀를 보고 부모가 돼서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뒀냐며 성을 낼 때 큰딸은 얼이 쏙 빠졌다. 임산부인 큰딸이 혼자 돌쟁이 둘째를 데리고 여러 차례 드나든 대학병원에서 판정받은 저색소모반은 질병이 아닌 선천적 증세였다. 그런데 부모가 돼서? 부모가 돼서라고? 식구가 죽거나 말거나 제 자존심 챙기느라고 나 몰라라 내뺀 주제에?라고 내뱉지 못할 말은 우두둑 씹어 삼켰다. 그의 뻔뻔함이 도를 넘는 정신승리는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끔씩 큰딸로부터 그의 근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아무래도 그 인간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제발 연락을 끊으라고 닦달했다. 그녀는 언제고 그를 쫓느라 혈안이 된 빚쟁이들이 들이닥칠까 불안했다. 큰딸은 걱정이 태산 같은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엄만 이미 이혼하셨으니까 그럴 일 없어요."

    "나는 둘째치고 딸인 너한테 해가 되면 어떡하니."

    "지레 겁을 먹고 그러세요. 언제 한 번 날 잡고 얘기나 해볼게요."


    큰딸이 마침내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던 날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역 앞에서 카페 입구까지 걷는데 우산이 없다는 이유로 그 팔짱을 끼려 들었다. 큰딸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슬쩍 팔을 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 말마따나 제정신이 아닌가 봐. 카페 안에서 큰딸은 그에게 질문을 가장한 심문을 연속했다. 그가 여태껏 정착 못하고 이곳저곳 떠도는 이유를 재차 물었지만 늘 그렇듯 그는 얼버무리고 말았다. 재회 후 2년 내내 이런 식이었다. 쳇바퀴를 구르는 듯한 되풀이에 큰딸의 인내심은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때마침 그는 화제 전환으로 친정 식구의 안부를 물었다. 큰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덥석 물었다.


    "왜 직접 연락할 생각은 안 하고 나한테 물어요? 찾아가서 사과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죄인이지. 그래서 면목이 없다."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빌어야죠."

    "그래. 하지만 네 엄마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다고 네가 그랬잖아."

    "용서를 받고자 사과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사과하란 말이에요."

    "네 엄마가 날 만나기 싫다는데 내가 어떻게 사과를 하겠어."

    "그럼 진작 가서 사과하셨어야죠. 지난 세월이 몇 년이에요? 우리가 몇 년을 기다리고 찾아다녔는데. 그리고 마냥 버티면 잘못한 게 없던 일이 돼요? 이럴 거면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난 이유가 뭐예요?"

    "네가 먼저 나를 찾았잖아."

    "네, 네. 그러시겠죠."


    조롱하듯 내뱉은 큰딸의 머릿속에서 일순에 스치는 장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50년 전, 어머니의 연적이 머무르는 거처 앞에 우두커니 서서 그의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어떤 소년을 상상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소년은 두 자매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가 걸어 잠근 현관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자신의 경험이 떠올랐다. 불행의 오버랩을 걷어내며 그를 향해 불쑥 쏘아붙였다. "우리 어렸을 때 벌거 벗기고 집 밖으로 쫓아냈던 거 기억나세요? 것도 여러 번?"

    "네가 봤을 때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든? 아무래도 정신병원에 가봐야 되는 거 아니냐."

    "...  뭐라고요? 외할머니도 기억하시는 일인데요?"

    "... 너희 외할머니가 그러시던?"

    "외할머니도 아시고 우리가 기억한다고요."

    "하여간 난 그런 적 없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발뺌이라기보다는 실로 모독이라도 받았단 어투였다.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큰딸은 분노에 뒤섞인 궁금증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쩌면 진작 물었어야 했다. "대체 우리는 왜 버린 거예요?"


    좀 전까지 사뭇 언짢았던 그의 표정이 이내 풀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다. 다만, 네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떠났다. 네가 그때 다리미로 얼굴을 지졌잖아..."


    굳게 입을 닫은 채 자리를 박차고 나선 큰딸은 기가 막혔다. 그날 새벽에 컨테이너 벽 위로 아른거렸던 그림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 됐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다리미로 얼굴을 지졌으면 지금 얼굴이 이렇게 멀쩡하겠냐고? 그의 왜곡된 기억만큼이나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사실 다리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옭아맨 상실감과 부채감의 실체는 한낱 알량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열등감 덩어리였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민낯을 가리고자 자기방어에 열심인 그를 직관하면서, 큰딸 자신이야말로 그토록 회피하려던 진실을 비로소 마주했다. 저거 때문이었어. 고작 저거 때문이었어. 저거 때문에 소모된 그동안의 감정과 시간이 미칠 듯이 아까웠다.


    이후 그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얼마 뒤에 그가 가까운 지인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허겁지겁 형제들과 조우했다는 근황을 사촌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땐 쓴웃음이 절로 났다. 결국 자신의 가정은 끝까지 외면하는 그였다. 나는 평생 동안 먼저 그를 찾지 않으리라고 다시금 마음먹었다.


    어쩌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하고 막연했던 불안감은 어쭙잖은  마디로  형상을 온전히 드러냈다.  같이 직한  입을 열어 너무도 가벼이 시인했을 ,  역시 그를 온전히 버릴  있었다. 장장 10 년에 걸친 볼품없는 서사였으나 이제  인생에서 그의 존재는   줄의 요약으로 이만 마무리 짓겠다.


     인생의 시작은 그에게서 비롯됐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는 나 때문에 가족을 버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는 나를 끔찍이 여겼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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