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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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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Mar 08. 2021

시체탑

내가 꿈을 꾼 것인가 꿈이 나를 꾼 것인가.

Picture by. Cdd20 / Pixabay


    감긴 눈에는 졸음이 한가득인데 쉬이 잠들지 못했다. 몸을 뒤척이다 다시 눈을 떴다. 내 호흡은 한껏 고조다.  진즉에 달아난 잠은 내버려 두고 회상에 잠겼다. 실적을 위한 살인은 한 번 시작된 이래로 끝을 모른다. 독약 몇 알이면 선혈이 낭자하지 않아도 생명의 숨을 꺼뜨리기 이토록 쉽고 간편했다. 이미 수많은 얼굴과 몸뚱이가 탑처럼 층층이 쌓였다.


    시체탑을 죽 둘러본다. 점점이 얼굴마다 잠을 자듯 평안했다. 널브러진 육신마다 얼기설기 겹쳤다. 그 광경을 보는 내내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주변에 거울이나 반사될 것이 없으니 내 표정 또한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돌아서 철문을 굳게 닫음으로 부정한 죽음 철저하게 은폐됐다.


    자리로 복귀해 조서를 꾸미고 있자 세련된 외모의 상사가 다가왔다. 그녀는 가늘고 기다란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 끝에서 끝까지 죽 쓸며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주변을 싹 훑는다. 표정만큼이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는다. 별 특이 사항 없지? 항상 정리정돈을 잘해놓네, 앞으로도 잘해봐.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그녀는 올 때와 같이 홀연하게 떠났다.


    우리팀은 나를 비롯해 총 세 명으로 숙식을 비롯해 사무실이든 현장이든 일거수일투족 함께했다. 물론 살육과 은폐 작업도 포함해서. 팀원 중엔 친동생도 있었다. 나란히 드러누운 어둠 속에서 초라한 몸뚱이 위로 죄악의 탑이 육중한 무게를 실었다. 나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나 잠이 안 와. 내가 이상한 거냐."

    "나도 그래."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다. 우리 왜 그랬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전부 무고한 사람들인데.


    "어쩔 수 없었잖아, 중간관리자가 자꾸 실적을 재촉했으니까. "

    "우리가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거냐..."


    열기와 냉기가 들이닥쳐 전신을 휘감았다. 뒷덜미가 후끈거리고 간담이 서늘했다. 한동안 울먹이다가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하자 이내 어리둥절했다. 방금까지 앉아서 얼싸안던 우리 자매는 눈 깜짝할 새에 등을 지고 누워있다. 한참을 의아해하다 여기가 어딘지 퍼뜩 깨닫고서 안도감이  졌다. 다 꿈이었구나!


    살인도, 시체탑도, 죄악이 은폐된 철문 속 공간도, 꾸미던 조서도. 온갖 비현실적 설정에 일말의 의심조차 없었다. 꿈에선 비현실이 현실이었다. 이토록 충격적인 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음이 더욱 충격적이다. 돌이키면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은 뜬구름이건만 이토록 생생한 죄책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면 지금이야말로 꿈인가. 알고 보니 현실이 비현실일까.


     뒷덜미가 후끈거리고 간담이 서늘했다. 열기와 냉기로 휘감긴 소용돌이  가시지 않. 내 호흡은 한껏 가라앉았다. 달아난 잠을 붙잡고 회상에서 벗어난다. 몸을 뒤척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감긴 눈에는 졸음이 한가득인데 쉬이 잠들지 못했다. 이윽고 동이 틀 무렵에야 무감의 심연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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