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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May 27. 2021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폐쇄회로에서 한 발짝이라도 이탈! 해보자.

Picture by. frank mckenna / Unsplash


   이번 에만 두 명의 사원이 관둔다. 팀 내 유일한 남성 사원도 포함해서다. 두 사람의 퇴사는 한 달 전부터 예정되어 지난주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마지막 근무까지 사흘도 남았건만 신입 채용아직 면접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접수가 쇄도할 땐 지금 인원으로도 빠듯한데. 팀장 한 명 당장 다음 주부터 걱정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제품 특성상 장마철이 다가올수록 강성 고객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선임의 전망나 또한 슬슬 초조하다. 그런 와중에 어떤 소문이 떠돌았다. 


    신입의 채용 선발 기준이 정규직이며 '남성만' 뽑는다는 소문의 이유인즉슨 근무 실태에 있음을 크게 부정할 순 없다. 간혹 상세한 기술 상담을 명목으로 콕 집어 '남자 상담원'과의 상담을 요구하는데 이만하면 차라리 약과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유명무실하게도 무릇 진상이라면 반말과 욕설 섞인 폭언과 고성은 기본으로 아가씨(내지는 미친년)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무슨 규정이 그 따위냐며 소비자 우롱 어쩌고 저쩌고, 너희의 장삿속을 인터넷에 널리 유포하겠다며 휘모리장단으로 타령을 하더니 급기야 남자를 바꾸라며 정점을 찍는다. 그렇게 이첩하면 거짓말처럼 수그러든다. 심지어 이전 상담  일절 설명하지 않았던 문제 증상에 대한 본인의 귀책 무슨 고해성사 마냥 자진해서 실토하기도 다.


  공연히 진을 뺀 이전 상담사는 허탈함에 실소가 난다. 결국은 똑같은 안내임에도 사원의 성별에 따라 태도가 딴판이라니. 드물게는 상담원이 남성이라서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채용 기준을 성에 한정하겠다고? 소문으로만 들었을 땐 아무렴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회의 때 소문으로만 듣던 채용 공고의 실체를 직접 보고 들으며 확인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헛소리라도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회사의 입장 또한 수긍하는 바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궁극적인 원인에서부터 환멸을 느낀다. 모 아니면 도, 이거 아니면 저거, 남자 아니면 여자, 세상을 단 두 가지로만 정의 내리는 이분법적 프레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지독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 자유와 권리를 주창하면서 실상은 순 모순투성이다.


    차이와 차별의 동일시로도 모자라 '이건 무엇이다'라고 일차원적으로 축소시킨다. 즉 수많은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틀에 박힌 도식화에 물드는 것이다. 이를 인지하려는 일말의 노력조차 없다. 이 편 혹은 저 편에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힘의 논리란 미명 하에 자행된 만행을 외면하고, 평등이란 미명 하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세우 급급하다. 알게 모르게 재빠른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인습이 때때로 관념을 고정시키고 본질을 흐린다. 


    비단, 날이 갈수록 서슴지 않게 선을 씨게 넘는 진상들을 전화 응대하기 훨씬 전부터 늘 어리둥절했다. 가뜩이나 녹록지 않은 삶인데, 구태여 같잖은 명분을 보태면서까지 자신과 인에게 소모적인 씨름을 할까.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뭐지? 정신승리?


   일개 소시민인 내가 별 수 있나. 번번이 부당하다며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기도 싫고. 그저 주어진 소임을 해나가는 알바는 가끔씩 소리 없는 아우성만 공허하게 내지르고 , '무엇'이라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 없다고. 누구나 응당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이다. 설령 세상이 양면뿐이더라도 차이와 차별, 의미부여와 속단, 규정과 편견, 우선시와 우월의식은 분명 구분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자산은 고작일 뿐이지만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다. 이 지겨운 폐쇄회로에서 단 한 발짝이라도 이탈하는 것, 그리고 지금의 과도기를 지나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무렵엔 좀 더 안정적인 사회가 되길 바라 것. 후자는 비단 내 염원만으론 이룰 수 없을지언정, 그래도 전자만은  수 있는 최선을 다하리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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