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하 Apr 09. 2021

함함한 고슴도치

우리 막내 귀여운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해 주세요.

Photo by. Siem van Woerkom / Unsplash


    막내는 올해로 세 살이 되었다. 아가 나이 세 살이면 평생 치 효도를 다한다는 속언이 있다. 물론 위의 누나들과 형아도 하나같이 예쁘고 기특하지만, 육아 9년 차에 접어든 다둥이 엄마로서 굳이 세 살인 점은 실로 공감된다.


    개인차가 있지만 통상 세 살이면 이제 막 직립보행에 적응해가는 나이. 한창 뒤뚱거리며 본격적으로 세상을 탐색하는 나이. 조금씩 말귀를 알아듣고 서툴게 모방하며 원색적인 표현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나이. 가장 순수한 사랑이 넘치는 나이. (아직은) 똥을 싸도 귀여운 나이. 이쯤 되니 이토록 사랑스러운 우리 막내 자랑을 안 할 수 없다. 팔불출 엄마의 시선을 서술해본다.


    뒤통수만큼이나 이마도 짱구. 갈매기 날개를 그린듯한 양 눈썹. 기나긴 속눈썹마다 품은 올망졸망 두 눈 가득히 반짝이는 별이 하나, 둘. 그 안에 고인 맑은 은하수가 종종 흘러넘친다. 속꺼풀이 진 땡그란 눈매는 웃고 울 때마다 휘어지는 반달. 오른눈 아래 헛헛한 구레나룻으로 가다 말고 하나 있는 매력점은 볼때기 다음으로 주요 뽀뽀 포인트! 얼굴 양 옆으로 태아적 모습을 간직한 귓바퀴와 야들야들한 귓불. 다시 정중앙에서 동글동글 콧방울 아래 볼똑한 인중과 두 볼은 흘겨보나 내려다보나 단연 독보적이다.


    다람쥐처럼 안에 도토리라도 비축해놨는지 어여쁜 볼때기는 흡사 말랑말랑 찹쌀떡. <착하고 아름답게>라는 동요에서처럼 앵두같이 예쁜 입술. 메롱- 할 때마다 빼꼼 내미는 앙증맞은 혀. 뽀얀 유치가 다 드러나도록 커다래지는 똥그란 입 안에선 투명한 옥구슬이 또르르 흘러나온다. 뺨에서부터 이어져 목을 파묻는 볼록한 턱살. 자꾸만 시선을 부르는 이 얼굴이 내 손바닥 하나에 다 가려질 만큼 작지만 엄마인 나 하나쯤은 식은 죽 먹기로 심상을 가득 채운다.


    오동통한 손발과 팔다리. 엉덩이엔 삼신할머니가 강한 아쉬움으로 남기신듯한 새파란 몽고반점은 골짜기를 걸친다.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포동포동한 뱃살을 비죽 내미는 모습은 복스러운 포대화상과 닮아서 저절로 쓰다듬게 된다. 그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픈 마성의 아가.


    생김새만큼이나 귀여운 미성으로 따라 말하고, 인사하고, 노래도 잘한다. 까르르 웃음소리는 고막을 진득하게 타고 흘러 들어와 마음을 덥혀준다. '사랑해요'라는 말에 양팔로 힘껏 하트를 보며 헤실헤실 웃음이 새는 부모를 따라 방거림은 덤. 흥겨운 리듬에 맞춰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날마다 깜찍한 색다른 표현, 새로운 재롱. 펭귄처럼 아장아장한 걸음걸이. 피하 지방이 가득 푹신한 엄마의 다리를 안락의자 삼아 앉기. 엄마 옷이나 물건을 발견하면 품에 안아 들고 씩 웃으며 줄행랑을 놓다가 칭찬이 받고 싶을 땐 "여기여!"라고 씩씩하게 외치며 배달 서비스까지! 문 여는 소리에 뽀짝 뽀짝 달려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반겨주는 막내를 보자니 이래서 어린 자식더러 강아지라고 일컫나 보다. * 현관 앞에 선 귀염둥아, 막내둥아, 어린 강아지야.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지상에는 어머니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어딜 가나 엄마를 졸졸 따르며 착 달라붙는 껌딱지. 왕성한 호기심과 매번 달라지는 기분을 있는 힘껏 온몸으로 표현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자신을 자주 알아봐 달라는 듯이. 요즘 들어 부쩍 독립심이 강해지니 등 하원마다 손길을 뿌리칠지언정, 막상 갑자기 눈에 안 보이거나 졸릴 때마다 통곡을 하며 찾는 엄마란 존재는 이렇듯 아직 막내의 세상에서 가장 커다랗다. 비단 막내뿐 아니라 이미 세 살을 거친 첫째, 둘째, 셋째를 보면서도 절감한다. 역시 세 살은 평생치 효도를 다 할 나이다.


    아이의 나이가 세 살이 지나면 아무리 고단해도 사랑을 양껏 준 듯 주지 못한 아쉬움 또한 짙어진다. 아이들 모두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젖 냄새는 사라졌어도 내 눈엔 여전히 아가들인데, 정작 아가적 시절은 영원한 듯 순식간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자라날 아이들과는 상대적으로 내 존재는 차츰 희미하게 작아지겠지.


    미미할 만큼 작아진 엄마라도 돌아볼 때마다 변함없는 사랑이고 싶다. 아득한 친정엄마의 품 속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엄마 냄새가 좋다는 아이들과 서로의 온기를 가득 실어 포옹한다. 뒹굴거리며 뽀뽀 세례를 퍼부을 때마다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에 덩달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야무진 아홉 살 첫째, 똑 부러진 일곱 살 둘째, 듬직한 다섯 살 셋째. 하나같이 어여쁘고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 평생 치 효도 중인 세 살 배기 넷째는 다시없을 막내라 쪼-금 더 귀엽긴 하다. 오늘 밤에도 우리집 안방에는 막내의 뾰족뾰족한 머리칼만큼이나 함함한 아기 고슴도치 사남매가 옴닥옴닥 부대낀 채 잠들었다.



* 박목월 / <가정> 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변형해서 인용해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절하지 못하는 청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