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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Apr 08. 2021

거절하지 못하는 청춘

결국은 반깁스

    3월 초에 눈꽃에 파묻혔던 벚나무 가지는 4월 초입에 이르러 만개가 절정이었다. 어딜 가든 길목마다 풍성하니 그야말로 향연이다. 그러나 파란 하늘에서 내려온 말간 봄볕을 먹고 어린 잎사귀를 올린 가지마다 송알송알 흐드러진 벚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그저 동네방네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하다. 일상의 굴레 속에서 허덕이며 감동도 재미도 없이 흘려보내야 하는 한 떨기 스물아홉은 사무치게 쓸쓸하다. 차라리 누군가의 말마따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쓰레기'라며 애써 독살스레 암시해본다. 그럼에도 내 눈에 비치는 벚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고혹적이다.



    가을도 타고 봄도 타는 아줌마는 짬짬이 *<라일락>을 흥얼거리며 꽃멍에 시간을 할애한다. 한낮의 벚꽃놀이라는 소박한 소망은 결국 올봄에 이루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게으름 말고도 결정적 쐐기는 따로 있었으니, 그 배경은 바로 '거절하지 못해서'다.




    이틀 전, 직장에서 상사가 사비를 들여 팀원 전체에게 커피를 쏘셨다. 비좁은 사무실에서 바로 뒤에 앉아 있는 팀장님 바로 앞에서 카페인을 못 마시는 동료가 권하는 커피잔을 거절하지 못하고 흔쾌히 받아 들었다. 저 주세요, 하고 휘어진 눈웃음과 영 딴판으로 두 손은 남모르게 덜덜거렸다. 이거 혹시... 벌칙 수행인가?(만우절은 이미 지났는데.) 사방에 형체 없는 시선을 의식하며 내 몫까지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아무리 카페인 빠순이래도 4시간 만에 벤티 두 잔은 무리였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봄바람 타고 실려와 과다한 카페인으로 박차를 가한 들뜬 기분은 그날 밤늦게까지 죽 지속됐다. 커피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밤중 산책이었다. 사남매가 모두 잠들자 남편이 동네 한 바퀴를 운동 삼아 함께 걷자며 설득했다. 환한 낮에 꽃놀이 가자며 조를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왜 어두운 밤에 나가자는 것인가, 위험하게시리. 잔뜩 약 올라서 내키지 않았던 산책의 시작은 생각보다 산뜻했다. 혼자선 싸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 자정이 넘은 시각, 올레길 저편에 펼쳐진 야경은 제법 근사했다.



    어쩌다 외로운 별이 듬성듬성 자리를 빛내는 캄캄한 밤하늘 아래로, 별무리를 몽땅 그러모아 옮겨놓은 양 온갖 조명 불빛은 지상에 점점이 수 놓였다. 어쩌다 외로운 가로등이 군데군데 자리를 지키는 컴컴한 올레길 위로, 백주의 단역에만 그쳤던 형형색색의 온갖 봄꽃들이 앞다투어 한밤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했다. 호젓한 운치 속 다채로운 축제. 까만 바탕 속 유난히 처연했던 하얀 낙화. 오고 가는 농담 따먹기와 진중한 대화. 적당히 서늘하여 쾌적한 봄밤의 산책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귀가하기 5분 전까지는.


    낮에 과음한 커피의 여파는 차가운 밤공기로도 다스리지 못했다. 이따금 모든 말과 행동이 내 의지가 아닌 듯 몽롱한 미시감이 들락날락했다. 그토록 팽팽한 줄다리기 중에, 별안간 비현실이 줄을 놔버리자 그 즉시 현실로 곤두박질쳤다. 한 푼이 아쉬운 우리 형편에 월 3만 원이 가당키나 하냐면서 구호개발 NGO에 정기후원을 기어코 중단시켰던 남편이,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3만 원 상당의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했단 실토를 듣자마자 설움에 복받쳐 항의했다. 나한테 그렇게 뭐라 뭐라 하더니만 내로남불이야 뭐야. 점차 바락바락 높아지는 언성의 끝은 외마디 비명이었다. 아악!


    열변을 토하느라 미처 피하지 못한 홈 파인 보도블록이 화근이었다. 하필 왼발을 접질렸다. 하필, 또 왼발을 접질렸다. 3주 전에 인대가 늘어나 검사하고 치료받던 그 왼발 말이다. 자그마치 2주가량 회복에 공을 들인 20만 원이 한순간에 공중분해됐다.


    수년간 괴로웠던 복사뼈 피부의 왕사마귀, 상다리에 부딪힌 충격으로 덜렁거리다 통째로 뽑힌 엄지발톱, 발목 접질리는 빈도는 갈수록 잦아지니 언젠가부터 왼발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행은 연례행사다. 주인을 잘못 만나 혹사당하는 *<나의 왼발>을 보며, 조만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거 아니냐는 남편의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미친 사람마냥 신음과 웃음소리가 번갈았다. 아파 죽겠는데 너무 웃기잖아. 이토록 번번이 스스로 아픔을 자처하는 내 꼴이 우스웠다. 나의 부주의함을 누굴 탓하겠냐마는, 거듭되는 술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 만취 상태로 접질린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거절하지 못한 3만 원이 부끄러운 커피와 밤산책이었다.


    그날 밤의 산책은 어쩌면 내 인생과 닮았다. 설렘에 취해 흐리멍덩한 의식으로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지나는 풍경마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신 감탄만 하다가, 잊고 지낸 통증을 극심하게 맛보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자각한다. 꾸역꾸역 받아내느라 거절도 못하고 감당도 못하고 결국은 다치고야 마는구나. 몸조차 가누지 못해 고작 1분 거리를 혼자 나아가지도 못하는구나. 그러나 산책길은 아무리 생소한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반면 인생이란 여로는 목적지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데다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다. 그 어떤 경우의 수도 예상할 수 없기에 선택은커녕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그러나 밤산책이 아니라면  지는 봄밤의 아름다움도, 스스로가 품은 의문의 존재도, 눈먼 아픔도 직시하지 못했겠지. 상태 메시지에 물음표만 가득 남은 나의 느려진 걸음에 속도를 맞추는 남편은 자신의 어깨마저 기꺼이 내주었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울고불고 소란한 귀가를 마쳤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었던 그는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기꺼이(과연?) 위문 야식에 동참했다. 퉁퉁 부어오른 왼발은 눈물 나게 아프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철부지 부부는 나란히 앉아 후루룩 쩝쩝 야식을 나눠 먹는다. 발코니창 너머로 솔바람에 나부끼는 벚꽃잎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가지마다 살랑거리는 잎사귀는 봄꽃이 남긴 아련한 향기를 머금고 짙어질 녹음을 기다린다.



* 아이유 / <라일락>,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그리고 '젊은 날의 추억'.

* 1991년에 개봉한 짐 쉐리단 감독의 영화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결국 그다음 날, 반깁스와 소염 진통제 등을 처방받았다. 정초엔 장염으로 입원을 하지 않나, 다친 발목을 3주 만에 또 다치다니. 아직 만으론 스물여덟인데 아홉수 체험판 뭐 그런 건가. 삼재도 아닌 것이 성장통 한 번 거하게 치르는 중이다. 그래, 좋게 좋게 생각하자. 여기서 더 안 다친 게 어디야. 이러니 저러니 다신 접질리지 않게끔 왼발 회복에나 전념해야겠다.


    이제 가지에 남은 것보다 바닥에 내려앉은 벚꽃잎의 수가 훨씬 많다. 소담하게 피어난 꽃은 한철뿐이라 더욱 특별하다. 마찬가지로 새순도, 녹음도, 단풍도, 낙엽도, 눈더미도 모두 한철뿐이다. 지금이 꽃봉오리인지 꽃인지, 개화인지 낙화인지, 새순인지 녹음인지 아니면 단풍인지 계절의 갈피마다 애매하고 서투른 구간에 이르더라도, 있는 그대로 특별하게 여기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도 좀 더 소중해지려나.


    하여간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적절한 대응과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꽃놀이도 그래서 놓쳤건만, 이미 지나간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의 궤적을 따르는 모든 계절이 다시없을 한철이니까. 서른 살엔 또 새로운 봄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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