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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Mar 21. 2021

주저앉는 청춘

보통이 다 무언가요.

    천재가 아님에 실망했지만 월등한 실력이 잠재됐을 거라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잠재력을 바탕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좀 더 내밀하게는 선한 영향력으로 주변으로부터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 싶었다. 소위 재능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덜컥 믿어버렸다. 아무리 미래가 막연한들 늘 확신에 찼다, 언젠가 멋진 어른이 될 거라는. "가진 게 많으니 분명 보통은 되겠지, 보통은." 맨발로 웅크려 앉은 노숙자에게 가진 돈의 전부를 망설임 없이 내놓았다. 경제관념도 철딱서니도 없던 미숙함이 더없는 순수함으로 용인됐던 시절이었다.


    착각은 완전한 오만이었다. 펄럭거리는 치맛바람, 날이 선 수군거림, 위태로운 독촉, 조바심에서 비롯된 재촉. 어수선한 군상의 소요 속에 끊임없이 휘말렸다. 언제 곤두박질칠까 싶은 순간에 구조됐고, 다시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가 뜻밖에 구원받는 알고리즘 반복될수록 평균치로부터 점차 아래로, 아래로 멀어졌다. 여전히 전망이 희뿌연들 낙관은 잔존했다, 멋진 어른과는 멀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은 어른이 될 거라는. "잔재주가 없진 않으니 못해도 보통은 되겠지, 보통은." 걸인이 눈에 띄면 잠시 망설임 끝에 구걸하는 손바닥 위로 가진 돈의 일부를 얹었다. 변변찮고 나약한 서투름이 탐탁지 않은 불운으로 납득됐던 시절이었다.


    오만은 완벽한 기만이었다. 재능은커녕 지능, 재력, 무엇 하나 볼품없다. 어쩐지 세상에 배신감마저 들어 억울했다. 혼자 질척이는 늪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동안 무심한 군상은 저 멀리 아득하다. 이제 나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길바닥에 맥없이 드러누운 이를 보고도 주저 없이 외면다. 가진 것 없이 어설픈 도움은 질시로 되돌아옴을 몸소 겪어왔다. 질시의 끝은 용수철로 칭칭 감긴듯한 관성을 가진 두려움이다. "내 주제에 무슨 되지도 않는 오지랖이야." 암시와 같은 합리화 차라리 불합리한 외면을 택한다.


    형체 없는 틀 안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추며 매 순간 타인을 의식하는 성인이 돼버렸다. 멋지지도 괜찮지도 않은 어른이 아닌 나이만 성인이 돼버렸다. 차라리 눈 뜬 장님으로라도 베풀 줄 알던, 거리낌 없이 미숙하고 서투른 시절의 내가 훨씬 더 괜찮고 멋졌다. 이제는 어떤 용인도, 납득도 허용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말 그대로 나잇값을 못하는 시절이다.


    거울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옷태는 왜 이 모양이고 머리는 또 왜 이래. 왜 이렇게 처신을 바로 못하고 무능해. 왜 나이가 찰수록 나아가지 못해. 내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싫어하는 음식을 강제로 식사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긋지긋하고 느끼하다.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발동하는 방어기제 이상의 자기애는 어려운 부분이다. 어릴 적엔 인정을 받지 못해 외로웠고 지금은 인정을 나누지 못해 외롭다. 뒤따르는 공허함과 열등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놈의 고독은 핑퐁의 연속이다. 충족에는 완벽한 정답이 없고 유사 답안만이 상존 까닭에, 고독에 굶주린 맹신과 맹목적인 의존에 대한 경계는 매사 필수불가결이다.


     알고 보니 보통이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보통과 동떨어진 내가 보통이 되려 한다고? 처해진 상황 자체로 보통과는 머나먼 내가 보통의 범주에 속하려면, 때때로 형체 없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보통의 몇 배로 공을 들여야만 한다. 지금까진 바등바등 갖은 애를 쓰며 바운더리 안으로 진입하고자 노력했다. 쉼 없는 물장구의 수면 위로 한없이 잔잔한 오리의 유영처럼, 남들 보기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들 제 딴에는 온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제야 비로소 지쳐서라도 그만두고 싶다. 평균치에 연연하는 것을 관두고 싶다. 애환이 가득한 인생  자체로 완성과 미완성을 거듭하는 시간적 공간적 소모인데,   굳이 바득바득 갖은 애를 써서 에너지마 축내 하나. 바라 마지않던 정체성도, 소속감도, 인정도 진즉에 오간  없지만. 결국 자신만의 속도가 남다름을 순순히 인정한다. 그러니  그만큼만,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만큼만 자신과 타협하  될까?


   판에 박힌 평균, 보통, 괜찮음, 개성, 존재감, 그리고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과 채우지 못할 고독 등등.  이상  무엇도 애써 붙들고 싶지 않다.  내려놓고 그저 주저앉아 흐름에 맡기고 싶은데, 마지못해 떠밀리는   싫다. 나원  어쩌자고? 호흡마다 판이한 모순이 판을 친다.


    황량한 마음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는 봄이 왔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하든지 말든지 나는 홀로 잔물결이 봄바람에 헤적이는 개여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싶다. 당신이 남긴 파동을 마냥 감상하고 싶다.  결에 좋아하는 노래  없이 부를  다면,  노래를 지나가는 당신이 흘려들을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 김소월 / <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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