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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Dec 02. 2018

보고있어도 보고싶다

설렌다는 감정이 정말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연애는 쭈뼛쭈뼛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가 나를 좋다하니 이게 뭔가 싶다가 너무 싫지만 않으면 문을 열었던 것이다. 정말인가? 이사람이 나한테 왜이러지? 그러다 상대방의 진심에 감동하고 고마워서 서서히 문을 열고, 그러다가 내가 더 좋아하고 그러다가 끝이 나버리는 결론이다.


이제 더이상 너에게 잘해줄 자신이 없어



3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시작때의 정성과 애정은 온데간데 없고 싸늘한, 주검과 같은 심장이 남아 나에게 차가운 눈초리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식으로 헤어졌었다. 사귄 3년만큼 헤어진 3년이 그 깊이만큼 힘이 들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연애란게 이런것이었었는지...


가을,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으로 그가 들어왔다.


거래처와의 미팅이 끝나고 그의 사무실 앞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던져진 숙제가 있어 언제까지 제출하겠노라하는 보고였고, 몇개단 위에서 내려다 본 그의 선한 눈빛에 갑자기 쿵 하고 가슴이 울렸다. 뭐 그래도 별수 없었다. 거래처 사람이었고, 그와 나는 회사가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그래서 실무자단에 서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다른 부서로 업무가 이관됐고, 하던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모든 관계는 끝이났다. 더이상 연락할 일도,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아야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나는 그와 카카오스토리 친구였다. 허삼관매혈기 책을 읽었다기에 나도 읽어서 반가움에 댓글을 달다가 불끈 용기가 났다. 친구들의 펌프질에 나도 이성을 잃고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허삼관 매혈기 볼래요?

말도안되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회신온 말은 '콜'

아 이거 뭐지? 내가 영화를 봐도 되나? 이 사람을 사무실 밖에서 만나도 되나? 무슨말을 하나? 우리는 사적인 대화를 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같은대학 선후배 사이였지만 우리는 함께 학교를 다닌적이 없었고, 다녔다 한들 같은과도 아니기에 더더욱 할말은 없었다. 그리고 요즘 시대가 학연을 운운하던 시대던가. 더군다나 갑과 을 사이에서 말이다.


두번, 세번, 네번 그렇게 만났다.


나는 그를 만났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술에 취했다. 아니 내가 취했다. 그래서 꼬셨다. 취한김에 속마음도 내비쳤다. 그는 눈치도 챘고, 술도 취하지 않았지만 그저 어수선한 내 마음을 다 받아줬다. 안쓰러웠을지 어쨌을지 모르지만 그런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헤어지면서 다시 만나기 위한 빌미를 주기위해 손가락에 싸구려 반지를 끼워줬다. 원래 반지를 끼지 않는 나지만 내가 왜 그날 반지를 꼈는지 몰랐지만 다시 만나고 싶어 새끼손가락에 내 싸구려 반지를 껴주고. 나는 그걸 빌미로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차가웠다. 다시 나는 팀장님이 되었다. 그리고 아팠다.


그래도 나는 이 설레는 마음이 내 전부인것 같아 부르고 또 불렀다. 세번째도 나왔다. 설레는걸 지나서 아프기 시작했는데 그정도가 심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포기하기로 마지막 만남을 갖기로 했다. 그래서 뮤지컬을 보자고 했고, 역시 그는 내 마음을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 나섰다. 공연도 보았다. 내 생일에 맞춰 내가 산 티켓을 가지고 나에게 주는 선물인것처럼 우리는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헤어졌다.


눈물은 났지만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는 갑자기 내게 술을 먹자고 당일 제안했고, 그 제안을 조정해 다른 날짜를 잡았다. 철저히 그는 마음에 없었지만 술이취해 하고싶은 기분대로 하고, 하고싶은 말을 다 했다. 이렇게 갑자기 친해질줄 몰랐어요. 난 그런마음 아니에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하지 그랬어.


차라리 그게 나았다. 너가 싫고, 앞으로 귀찮게 연락하지 말라고. 그랬으면 기분이 좀 나았을까. 그는 끊임없이 내 마음을 받아주고 만나주고 먼저 보자고 하고 술먹으면 연인인것같은 좋은 말도 해줬지만 정작 그의 마음속에 나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와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다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할수 없었다. 힘이 들 것이다. 아플 것이다. 괴로울 것이다. 쿨한척 친한 친구가 되자고 했지만 될 수 없었다. 언젠가 영화를 보자는 연락이 오기도 했고, 공연티켓이 있으니 함께 보자는 말도 했다. 나는 둘다 거절했다. 우리는 다시 잘 될 수 없으니, 나는 더 아플 수 없으니. 나도 살아야겠어서 거절했다. 나도 숨을 쉬었어야 하니까, 나도 살았어야 하니까 말이다.




한달은 밥도 못먹을 정도로 아렸다. 두번째 달은 숨은 쉴수 있었다. 세번째 달이 되니 점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달에 한번쯤은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리웠다. 2년정도는 매달 그런 증상이 찾아왔다. 지금쯤 뭘 할까? 누구를 좋아하게 될까? 그때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이나 할까? 나라는 존재를 기억이나 해줄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던지 말던지 내 기억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요즘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건, 내가 누굴 그렇게까지 좋아해본적이 있다는 것. 단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 용기를 냈고 온 마음을 쏟았고, 보여줬고, 그래서 실패한 경험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했다. 앞으로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3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질때 생각했다. 난 다시는 누굴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영원히 안녕일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런 감정이 생겼다. 아 나도 누굴 좋아할수 있는 사람이구나. 사람때문에 이렇게 괴롭고 아플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깨달은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측은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누구를 좋아한다면 더군다나 더 정중하게 거절해주어야 한다. 남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천벌을 받을 사람들, 내가 천벌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돌고 돌리는 공. 패스는 정확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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