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여행할 좋은 숙소 고르기
뮌헨 여행의 마지막 날,
숙소 주인 올라프씨는 어디선가 구해온 스티로폼 상자에 뽁뽁이 포장을 둘둘 둘러 맥주 4병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선 들고 갈 수 있겠느냐며 다시 독일에 꼭 올라고 말해주었다.
(숙소 도착 첫날 독일 맥주를 맛보고 싶어 하던 나에게 아우구스티너 켈러 맥주를 준비해주었다.)
아이가 고맙다며 가진 유로를 털어 올라프씨에게 건네주자 올라프씨는 껄껄 웃으며.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라고.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다시 돈을 아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간밤에 아이는 올라프씨 집 1층에 있던 그랜드 피아노를 쳐 보고 싶다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영어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리곤 가끔 올라프씨에게 단어를 이어 말을 건네곤 하였다.
스위스에 도착해 기차를 갈아타고 베른을 거쳐 인터라켄 전(前)역인 슈피츠역에 내렸다.
베른을 지나 슈피츠로 가는 길, 8월 한 여름에 만년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TV로만 보던 만년설이구나.
그림으로 보던 스위스, 우리가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만년설을 함께 보자며.. 아이보다 더 흥분한 나는 핸드폰으론 잘 담기지 않는 만년설을
DSLR 카메라로 몇장 찍기 시작했는데 바로 슈피츠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서둘러 카메라와 캐리어 세개, 아이를 챙겨 내렸고 숙소 주인인 Mia 할머니와 슈피츠 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취리히에서 늦게 내리는 바람에 이미 인터라켄 행 기차를 한번 놓친터라 혹시 못 내릴까 재빨리 내렸다.
역 플랫폼으로 나가려고 돌아서는 순간 어떤 할머니가 내 등을 두드리며
"Your phone... " 어쩌고 저쩌고...
"?"
'아뿔사..핸드폰이 기차에 있다....'
'아직 기차 문은 닫히지 않았다. 지금 뛰어 올라가면 휴대폰을 집을 수 있다. 그런데..그 사이 기차 문이 닫힌다면..... 아이랑 헤어지고 짐도 잃고.. '
망연자실하며 빤히 기차를 바라보는 사이 문은 철컹 닫히고 2~3초간의 망설임이 끝나자
기차는 인터라켄, 체르마트를 거쳐 밀라노로 ...
Mia와 만나 슈피츠 숙소로 가는 길에 'Great Beautiful Landscape...' 를 몇 번이나 외쳤지만
속으로 나는 울고 있었다.
그때부턴 무슨 정신으로 슈피츠 마을을 산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도 않고 모든 여행 정보를 담아 놓은 휴대폰을 잃어버렸으니
이젠 어떻게 여행하나 캄캄하기만 했다.
베른에서, 루체른에서, 취리히에서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강가에 앉아서 먹고, 리마트 강에서 아이와 수영을 한 기억이 전부다.
슈피츠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옥빛의 튠 호수 물 색깔
스위스 국기가 걸린 전통 스위스 가옥인 샬레,
그 집 마당에서 피어 오르는 바베큐 연기,
튠 호숫가의 보트들,
푸른 초원들과 머리 위로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 초록빛 밀밭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호숫가의 집들, 머리위로 쏟아질 듯 깨알 같이 빛나던 별들...
그 어떤 것도 눈 앞에서 스쳐 지나갈 뿐 여행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숙소 주인 Mia씨는 스위스 철도청 SBB에 전화를 걸어 몇 시간을 내 휴대폰을 찾아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기차는 이탈리아 기차, 밀라노 행.
한국에 돌아와 휴대폰이 꺼진 위치를 추적을 해 보니 역시 휴대폰은 밀라노에서 꺼졌다.
만약 취리히에서 좀 더 빨리 내려서 인터라켄이 종점인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면
아마 휴대폰은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다음날 미아씨의 부엌에서는 조각낸 빵과 치즈 퐁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겨울, 피렌체,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진 감기가 밤새 기침을 불렀고 목과 가슴의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게다가 피렌체 숙소는 역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그야 말로 현지인들 밖에 없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신혼 부부의 집.
1박에 35유로 정도 하는 저렴한 숙소는 무척 추웠고 창고로 쓰던 방을 개조해 침대를 놓고 임대하는 방이었다.
통증이 심해져 기침 소리에 한숨을 못 자고 밤에 아이가 깰 거 같아 약을 사러 약국에 다녀오는 동안
숙소 주인인 까를라씨에게 잠시 아이를 부탁했다.
숙소에는 고양이 네 마리와 아주 멋진 개 한마리가 있었다
약을 사고, 마트에 들러 선물할 초콜릿, 와인, 아이와 먹을 저녁거리를 사 들고 돌아왔다.
내내 혼자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되어 걸음이 빨라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고양이와 침대에서 뒹구르르, 이탈리아 고양이에게 한국말로 "이리와, 저리가, 앉아, 야 너~~이럴거야?" 하며 잘 놀고 있었다. 고양이가 침대까지 파고 들어서 침대엔 개털, 고양이털로 도배가 될만큼이었지만
숙소 주인 까를라씨와는 무슨 말을 하는건지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까지 하며 까를라네 부엌에서 놀고 있었다.
매우 놀랐고 내가 왜 걱정을 한거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아이와 여행에서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숙소를 고를때는 아이가 최대한 그 여행지 현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잡는 것이 어떨까.
물론 좋은 호텔, 수영장이 있는 토스카나의 멋진 뷰를 가진 빌라, 교통이 편리한 역 근처의 숙소도 좋지만
아이와의 여행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내가 현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현지 음식도 접할 수도 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낯선 문화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사는 공간을 엿보고,
그들이 낯선 이방인인 우리에게 어떠한 태도와 친절을 보이는지,
조금 멀고 버스로 트램으로 지하철로 조금 더 움직이더라도 말이다.
아이는 아직도 올라프씨의 친절을 기억하며 피렌체에서 까를라와 나눴던 고양이와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파리에서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윗집 할머니에게 도움을 부탁했던 일,
유럽의 그 수동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고 무서워서 울던 일까지도
그리곤 가끔,
기억을 꺼내 다시 가고 싶다 말한다.
아이에겐 아이의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도록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