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아이만의 여행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가 실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태도의 변화다. 태도는 영어로 attitude라고 번역하지만 심리학 용어로서 attitude는 '태도'라는 우리말과는 살짝 뉘앙스가 다르다.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저서<에티튜드>에서 "에티튜드는 라틴어 앱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준비' 혹은 '적응'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며 어원적 의미로 따지면 무언가를 행할 준비가 된 상태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 박경철의 자기 혁명 중에서 -
파리 여행 나흘째 되던 날,
파리 이에나 시장을 둘러보고 오르셰 미술관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거기서 한국인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그 가족도 오르셰 미술관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파리 시내 버스에서 만난 한국인이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도 동행하게 되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그 집 6학년된 남자 아이가 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파리에 여러번 오셨나봐요.
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길을 잘 알죠?"
"처음이예요. 우린 쟤 없으면 여행 못 다녀요.
얘가 우리를 다 데리고 다니죠"
이 아이가 다녀온 파리와 부모나 다른 단체에서 함께 따라온 아이들이 다녀온 파리가 같은 기억으로 남았을까. 아이는 커서도 내가 이끌고 다녔던 그 파리의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오르셰 가는 길을 기억할 것이다. 아니 온 파리가 자기의 여행 기억으로 가득할 것이다.
파리 몽마르트와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단체 여행 온 한국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영어 학원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대개 자기들끼리 놀고 쉴새 없이 떠드느라 나와 마주치기 전 저 멀리서부터 주변 온 동네가 한국말로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내일은 어디 가는지 아니?"
"어.. 모르겠는데요~ "
아이와 여행을 준비할때 대개 부모들은 이런 정보만 알려준다.
"우린 000로 갈거야. 0박 0일이야."
"가서 최대한 많이 보고 잘 따라다녀.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말 잘 들으면 가서 맛있는거 사줄거야."
"오늘은 어디 어디 갈거야. 가서 뭘 보고 뭘 볼거야. 그리고 맛집 어디를 갈거야. 그 나라 음식도 좀 먹어봐. 이것도 다 경험이야"
이렇게 제한적인 정보를 주고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여행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여행이 될 수 있는 상태, 준비된 적응 상태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다음과 같이 아이와 함께 여행을 준비해보자.
첫째, 아이와 함께 여행 루트을 알아보게 해 보자.
블로그나 항공기 추적 사이트, 여행 루트 어플을 통해서
우리가 가는 비행기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기내식들이 나오는지.
어느 나라 비행기이며 경유지는 어디인지.
지도위에서 어떤 항로를 따라 지구의 어느땅 위를 날아가는지.
우리가 여행할 루트는 어떤 경로이며 무엇을 타고 도시간 이동을 하게 되는지. 기차인지. 버스인지. 항공인지.
아이는 아직도 암스테르담에서, 뉘른베르크에서 탔던 ICE를 기억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가 보고 싶은 곳을 아이가 정하게 해 보자.
함께 서점에서 가서 여행 책 두어권을 같이 보면서 같이 여행할 나라에서 한 도시, 한 도시에서 한 곳 정도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에 맞게 일정을 계획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선택한 여행지를 더 기대하게 되고 자발적인 여행으로 그 여행지만큼은 오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아이는 피사를 꼭 가 보고 싶어했다. 일정에서 넣을까 뺄까 고민했지만 아이의 선택을 넣어주기로 했다. 1월의 늦은 오후 피사 역에서 몇 Km를 걸어 도착한 피사의 사탑을 보자 마자
"나 저기 올라갈래"
셋째, 여행을 떠나기전에 미리 체험해보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갈거라면 어떤 그림들이, 어떤 유물들이 있는지, 고흐와 밀레에 대해서도 말이다. 여러 정보를 통해서 미리 알아보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도 좋고, 세계테마기행도 좋고, 책도 좋고, 체험전에도 미리 다녀오면 어떨까. 이탈리아를 가기 전 미리 미켈란젤로 전을 가서 천지창조 그림을 보았고 안네의 일기도 같이 보았다.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트로티 바이크를 타고 내려오기 위해서 집에서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고 내리막길을 연습했다. 잘츠부르크를 가기전에 같이 영화를 보았고 도레미송을 불러보기도 했다.
어제 TV에 나온 미라벨 정원을 보자 아이는
"저기 내가 우산으로 반사판 비춰줬던곳이네."
아이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부모를 따라 가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아이만의 여행을 만들어 주자.
그럼 어느 일기보다 아이의 기억 속에 생생한 여행의 장면이 남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