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들어왔다. 약간의 언덕 위에 있는 카페는 언덕을 올라갈 땐 모르지만, 올라와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막혀있는 내 안에 통로를 뚫어준다.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시킨다. 메뉴판에도 없는 에스프레소를 아쉬워하면서 카페 사장님께 여쭤본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카페에 있는 가장 작은 잔에 에스프레소를 받는다. 오늘은 읽어야 하는 책이 있어 카페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글이 읽히지 않는 날이다.
무엇 때문에 글이 읽히지 않을까. 따뜻해진 날씨 덕분일까. 잔잔하게 들리는 카페노래 때문일까. 옆 테이블에 앉은 연인들의 대화 때문일까. 읽고 싶은 글이 아닌 읽어야만 하는 글이기 때문일까.
읽어야만 하는 이 책은 지금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구독을 시작한 이슬아 작가님의 일간 이슬아를 킨다. 메일함에 들어와 있는 5개의 메일을 확인한다. 이슬아 작가님의 특유의 자연스러운 문맥을 좋아하고, 그냥 읽히는 작가님의 문장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쌓여있는 5개의 메일이 부담스럽다. 시킨 음료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스푼을 입에 물고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지금 글이 읽히지 않을까.
스푼을 입에 문 채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여전히 시원한데, 내 머릿속은 답답하기만 하다. 왜 글이 읽히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넘겨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조차 어렵다. 머릿속에 가득 찬 무언가가 페이지를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쌓아둔 것들이 너무 많아진 걸까. 읽어야 할 책, 답해야 할 메시지, 해야만 하는 일들. 하나둘 쌓이다 보니, 어느새 그것들이 나를 압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책을 펼쳐본다. 단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갈 뿐, 의미는 남지 않는다. 오늘은 글을 읽지 않기로 한다. 읽어야 하는 글이 아닌, 읽고 싶은 순간이 올 때까지. 책을 덮고, 다 먹은 에스프레소 잔을 괜히 들어 입에 댄다. 어쩌면 오늘은, 그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