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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쉽게 잃어버리지 않아

그냥 글이 써졌어

by 민창

겨울에 태어나 추위를 잊지 않았듯이, 깊이 새겨진 따뜻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도,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도, 처음의 온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땅 깊숙이 내려가듯, 한 번 자리 잡은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이야기한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도 점점 멀어지고, 손끝에 남았던 온기도 어느새 희미해진다고 한다. 쌓여가는 날들 속에서 처음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인연은 계절이 바뀌어도, 시간이 흘러도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한 순간들이 쌓이며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햇살이 부드럽게 퍼지는 봄날, 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함께 걷는다. 벚꽃이 피어나는 풍경 속에서 가벼운 바람이 스친다. 그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것만 같다. 여름이 오면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같은 공기를 마신다. 가을이 되면 거리에는 노란 잎들이 흩날리고, 길가의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길을 걸으며 나누는 말들이 잔잔한 음악처럼 가슴속에 남는다. 겨울이 오면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지만, 손을 맞잡은 온기 하나로 모든 것이 따뜻해진다. 계절은 변해도, 처음의 따뜻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때로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때가 있다.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고,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는 날도 있다. 걷던 길에서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흐려지고, 발밑이 흔들리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지나온 날들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겨울이 다시 오고, 또다시 눈이 내리는 날이 찾아와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 따뜻함이 계절을 따라 흐르면서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마음일 것이다. 한 번 피어난 따스함이 쉽게 식지 않는다면,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간다 해도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깊이 새겨진 인연일 것이다. 그렇게 지켜낸 온기는 어떤 시간 속에서도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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