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서울과 인천을 오고 가는 주중에는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로, 오후 7시부터 직장일이 시작이어서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쯤부터 천천히 산책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작업 중 하나다. 보는 것을 보이는 대로 찍는 것. 본 것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남긴 다는 것. 그리고 다른 타인보다 잘 찍어야 한다는 경쟁이 없기에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가끔씩 남들이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찍고 싶고, 유명한 사진의 구도와 색감을 따라 해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참 감사한 선생님 두 분을 만나 그분들에게 약 1년 반 사진을 배우고, 꾸준히 사진을 찍지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22년 2월이다.
군복무를 하고 있던 21년도 시기에 집 가기 3개월 남았을 때쯤, 생활관에 나 혼자 오전일과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산 풍경을 보면서 멍 때리고 있을 때 문득, 그냥 흘러가는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하고는 취미로 카메라 한 대를 사서 사진을 좀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전역 후 필름 카메라를 샀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사진. 필름을 감아 한 장 한 장 레버를 당겨 찍는 사진이 참 재미있었다. 내가 본 아름다운 순간을 내 손으로 담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참 즐거웠다. 한 번은, 햇빛이 엄청 쨍한 서울 숲에서 컬러필름을 넣고 수동카레라여서 빛, 속도, 조리개 모두 다 조정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 현상소를 갔는데 현상소 사장님께서 나를 긴장하게 하시는 말을 던지셨다.
"이거 흑백필름이에요."
아... 컬러필름이라고 생각하고 다 맞춰서 찍은 건데... 그때 필름 가격이 대략 13,000원 정도 했고, 흑백 현상은 10,000원이었다. 그렇단말은 사진 36컷을 내 핸드폰으로 담기 위해선 약 23,000원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름카메라가 참 비싼 취미다.
"이거 사진 아무것도 안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사장님의 이 말씀이 너무 슬펐다. 쨍한 햇빛에 너무 더운 날씨였고, 아까운 필름을 버린 거 같아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일주일 후에 받은 필름사진은 아니나 다를까 36컷 중 30개 이상이 아무런 피사체 없이 하얗기만 하든가, 어둡기만 했다. 그중 내 눈에 너무 들어오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넓은 들판에 연인이 돗자리에 앉아있던 장면. 그 장면이 너무 영화 같아서 멀리서 한 컷을 남겼었다. 한 장을 더 남기고 싶었지만 필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못 찍었던 장면. 그 장면이 내 기준에서 너무 완벽하게 찍혀서 받은 폴더에 들어가 있었다.
적당한 밝기, 적당한 대비, 필름사진의 약간의 노이즈, 흑백이라 선명하게 보이는 빛의 선, 돗자리에 앉은 연인이 완벽하게 보이고. 이 사진이 너무 맘에 들었다. 나머지 사진들이 잘 남겨지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내가 남기고 싶었던 장면을 완벽하게 남겼던 거 같아 너무 기뻤다. 기쁨과 함께 찾아온 건 물음표였다.
분명, 컬러 필름이라고 생각했고 감도도 분명 다르게 설정하고 찍었는데, 왜 이렇게 사진이 나왔을까. 질문은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고, 마음은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용기로 바뀌었다. 그렇게 사진을 배우고 경험했다. 배우는 동안 나 자신의 너무 많은 부족함을 경험했고, 부족함은 내가 사진을 배우는 이유가 되어줬다.
찬란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우연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사진 한 장 덕분에 지금까지 사진을 남기고 배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 부족함을 계속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