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슬픔과 화해하기
처음 내 눈물의 기억은 일곱 살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다니는 유치원과 교회는 같은 동네에 있었다. 유치원과 교회 가운데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이는 놀이터가 있다. 그곳에서 노는 아이들 모두가 배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어른들의 높이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낭만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가장 높은 자리는 모두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일곱 살 어린아이 한 명이 올라가서 간신히 서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참 많이 비슷했었나 보다. 모두가 올라가 보고 싶은 장소였기 때문에 줄을 서기도 했었고, 올라가 있는 아이에게 내려오라고 소리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나보다 한 살 어린 동네 아이가 내 앞을 새치기했었다. 내가 먼저 왔으니 내 뒤로 가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꼬마는 나를 밀치고 내 어깨를 때렸다. 나보다 어리고 덩치가 작은 동생에게 맞은 부분은 아프지 않았다. 나에게 찾아오는 감정은 분노보단, 정당하게 내 뒤로 가라고 이야기했는데 돌아오는 폭력에 대한 억울함과 맞은 내가 되갚아주고 싶어 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눈물이 났고, 옆에 있던 친구들과 그 아이에 어머니가 오셔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시고, 그 동생에게도 사과하라고 강요하셨다. 동네 놀이터에 이슈가 됐던 일곱 살의 나는 울면서 동네 육교를 건너 집을 갔다. 울면서 들어온 나를 보고 엄마와 아빠가 놀라면서 나를 맞이해 줬다.
"민창아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놀다가 거기에 있는 애한테 맞았어."
"맞았어? 어디 다쳤어?"
"아프지는 않고, 여기랑 여기 맞았어 그리고 나를 밀쳤어."
"그 아이는? 다쳤어?"
"아니, 나는 안 때렸어."
그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답답한 표정을 짓는 엄마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아빠의 표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때렸어야지. 너도 맞았으면 더 때렸어야지!"
엄마와 아빠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그 아이가 아프잖아. 나보다 어리고 덩치도 작은데"
내 대답을 듣고 할 말을 잊어버린 엄마와 아빠가 내 앞에 있었다. 그 후에 나는 방에 들어가 엄마와 아빠가 화내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대화를 들었다.
"나는 깽값을 주는 한이 있어도 민창이 맞고 오는 병원비는 절대로 낼 수 없어"
문틈사이로 들어오는 아빠의 그 말이 왜 이렇게 나에게는 상처가 됐었는지. 나보다 머리 높이 정도 차이가 나는 작은 덩치를 가지고 있던 동생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런 마음이 없어도 내가 때렸다면 분명 나보다 아파하고 울었을 거다. 그럼 아빠는 내가 누군가를 울리길 바라는 걸까. 어렸던 일곱 살의 나는 할 수 있는 건 자책뿐이었다. 때렸어야 했구나, 최소한 울면서 오지 말았어야 했구나, 눈물을 그치고 집에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어야 했나. 그 후로 나는 최선을 다해 최소한 부모님 앞에서는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마무리할 수 있는 건 마무리하고 엄마와 아빠에게는 마무리가 된 후에 이야기를 했다.
가끔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지인 중에 나에게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럼 너는 만약에 아이를 낳으면 때리지 않을 거야? 나는, 어느 정도 교육을 위해선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나는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라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폭력을 이야기해도 그건 그저 어른들이 아이가 그렇게 받아주길 바라는 것뿐이라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도 40센티 정도 차이가 나는 어른에게 맞는 폭력은 꾸밀 수 없다. 그건 그냥 폭력이다.
"그럼 때리지 않고 맞기만 하고 네 아이가 오면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안아줘야지.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아 줘서 잘했다고 칭찬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해야지. 폭력은 어떠한 것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다고 교육해야지.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선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용기를 줘야지.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내가 도와야지."
나는 한 번도 그런 내 모습을 미워하지 않았다. 자책했던 적이 있어도 결국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이웃의 몸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건, 내 본연의 모습 자체를 먼저 사랑해 주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그 시작은 어른들이 해줘야 한다. 그런 모습을 가지고 살아도 괜찮다고 용기를 주며 그런 세상임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