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글을 쓰지 않은지 2주가 지났다. 시국에 맞게 글을 남기는 것보다 소리를 외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글을 안 쓴 지 14일이 지난 게 짧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나한테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가졌던 긴 공백의 시간이었다. 군대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책이 나왔을 때도 감격이라는 감정으로 글을 썼고, 모든 시간 모든 감정을 가지고 글을 썼던 나에게 글을 안 쓴 2주는 정말 '멈춤'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기간이었다. 브런치 작가서랍에 써져 있는 글을 발행하던 나는 오늘, 흰 여백을 2주 만에 마주했다.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가,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얀 도로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길을 잃었으니 천천히 되돌아가보자. 내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를 쓰자. 오늘 다시 쓰지 시작한 이유는 내일 수능 끝난 친구들 앞에서 에세이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강의 시간에 독립출판이라는 곳에서 만난 작가님들과 책들을 소개하고 내 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모으는 나만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 강의를 할 때마다 근본적인 질문이 들어온다. "작가님은 왜 글을 쓰세요?" 그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어 오늘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에게 그 질문이 들어온다면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멋진 대답이고 싶다. 내 대답을 통해 듣는 친구들이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막 글을 써서 막 책을 내구 막 독립출판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지금 내 목까지 올라온 대답은 "글을 안 쓰는 삶을 까먹어서"이다. 대답 참 메말라있다... 내일은 이렇게 대답 안 할 거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길. 아무튼, 글을 안 쓰고 사는 내 모습을 까먹었다. 2주 동안 글을 안 쓰면서도 순간순간 머릿속과 몸에 관통해 가는 감정, 경험을 나중에 글을 써야겠다고 메모장에 메모하는 내 모습. 글을 안 써도 기록하는 게 이제는 익숙해서 그런지 안 하는 삶이 기억나지 않는다.
또 다른 대답을 한다면 글을 모으는 행위에는 분명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글을 읽으며 세상을 배우고, 다수는 글을 써서 세상에 남기며, 소수는 글을 모아 세상을 이어간다. 세상을 이어가는 힘에는 글을 모으는 행위와 그걸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믿기에 글을 읽고 쓰고 그리고 모은다.
그래, 여기까지가 글을 다시 시작한 이유라면 그럼 다음 질문으로 가보자. 글을 쓰고 모으는 작업이 나에게 행복을 주고 있을까? 지금 나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책 작업을 같이하고 있다. 100개의 에세이를 엮은 단상집 컨셉과 슬픔과 파도 컨셉의 에세이집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2주 전에 매일매일 최소 글을 3개씩은 썼다. 글을 쓰며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는 그 작업이 나를 너무 지치게 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슬픔'과 마주하는 작업은 너무 깊은 슬픔의 동굴에 빠질까 두려워하며 쓴 글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바로 침대로 가곤 했다. 사실, 글은 나에게 행복을 매 순간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작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마음 어딘가에 숨기고, 나라는 존재 자체를 감춘 채 살아가는 것은 분명 행복이 아닐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 요즘 어떤 감정과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이다.
그래, 내가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많은 세상을 이어가며 살고 싶고, 마음에 응어리를 만들지 않고 아름답게 나를 남기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