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발언문
12월 7일은 일주일 전부터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던 하루였습니다. 바로 스웨덴 한림원에서 현지시간 오후5시에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작가님의 강연이 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대한 하루는 저와 모두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12월 3일 우리모두는 충격적인 경험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엄마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앞으로 있을 전철파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문이 열리는 소리로 아빠가 오셨다는 걸 알았고, 평상시와 달리 긴장이 섞인 목소리로 아빠는 저에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민창아, 뉴스 봤어?” “아뇨 아빠, 엄마랑 대화중이라서 티비 안켰지?” “지금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하던데?” 말도 안된다며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뉴스를 틀었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는 현장을 봤습니다. 그렇게 새벽 5시까지 잠을 자지않고 뉴스를 보며 밤을새고 학교를 갔습니다. 인천과 서울을 오고가며 늘 노래를 들었는데,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후에는 노래를 듣지않고 항상 뉴스를 들으면서 이동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던 3일부터 지금까지 전국의 여러장소에서 집회를 열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함께 모여 민주주의를 위해 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국회의사당을 오고가며 했던 집회는 폭력적이도, 위협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광화문에서 용산까지, 종각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며 모두가 함께 외쳤던 “윤석열은 탄핵하라!” , “윤석열은퇴진하라!”. 행진하는 우리를 보며 일상이 있어 몸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함께하며 손을 흔드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모아 12월 7일 국회의사당에 100만명의 인원이 모여 함께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건희특검법, 벌써 세 번째 폐기입니다. 뿐만아니라 투표 후 윤석열 탄핵안에 대해 투표를 거절하고 국회를 떠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그 곳에 있었던 시민들은 흔들고 있던 촛불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많은 시민들은 어떠한 당의 승리를 보고싶어서 모였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주는 합당한 나라임을 믿고 싶었기에,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루는 본질적인 제도인 투표권. 그들이 정말 건강한 민주주의를 꿈꾸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추운 날씨에 핫팩과 촛불을 들고 그 많은 사람이 국회로 모였던 것입니다. 그치만, 아쉽게도 많은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국회 집회가 끝나고 집을 가면서 오랜만에 뉴스를 듣지 않고 라이브로 보고 싶었던 한강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집에 갔습니다. 한강작가님의 강연 일부분을 읽어보려 합니다.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해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 ‘한강 노벨 수상자 강연 중’
긴장의 연속을 살고 있던 저에게 한강작가님의 강연은 오랜만에 쉼이 됐었습니다.
한강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며 국회집회에서 경험한 고통과 아름다움이 머릿속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민주주의 기본권리인 투표를 하지 않고 떠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 상처를 받은 국민들 앞에서 박근혜 탄핵 후 본인들의 권력을 잃어 상처를 받았었다고 이야기하는 모습,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 그러면서도 반면에, 집회 주변 카페에 미리 결제를 하고 시위하는 국민들에게 커피를 나눠준 시민, 국회의사당을 간다는 손님의 돈을 받지 않는 택시기사님, 시위 하는 옆에 쪼그려 앉아 촛불을 들고 아이패드로 기말고사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옆에 있는 시민에게 작은 초코바를 나눈 시민. 우리는 고통안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각각의 장소에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에 들어가는 군인들을 막은 사람, 나라에게 받은 상처를 위로하는 사람, 그들은 국민이었고 우리 옆에있는 지인들이었습니다.
저는 특별하거나, 어떠한 힘이 있기 때문에 촛불을 들고 현장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엘리 위젤이 수상 연설 중 한 부분입니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다” -‘엘리 위젤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 중’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한다? 아닙니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먼저가 아닙니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헌법을 유린했으며, 국회에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 질서를 파괴한 범죄자에게 벌을 주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상과 질서 그리고, 공감을 위해 사회에는 중립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희생자와 가해자가 있는 확실한 것에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이라는 것을 믿기때문에. 그리고, 제가 배운 신학은 약한자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기에 그 자리에 가는 겁니다. 또한, 내년 3월에 제 조카가 태어납니다. 사랑하는 제 조카가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는 겁니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소리내기를 소망합니다. 집회가 부담스럽다, 데모라는 이미지가 너무 무섭다면 그냥, 돌다리 만드는 곳에 돌 하나 옮기는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이곳 저곳 꿈꾸며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해 필요한 돌다리. 다른 사람이 건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돌다리 입니다. 돌다리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돌이 필요합니다. 이번 시국 기도회를 통해 더 많은 돌이 모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