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
삶(life)은 계란(egg)
계란을 삶는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다.
먼저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는 경우엔 잠시 상온에 계란을 두거나, 아니면 끓일 때부터 계란을 물에 담가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껍질이 잘 까지지 않는다. 만약에 상온에 둔 계란이라면 시작부터 냄비에 계란을 물과 함께 넣진 않아도 된다.
아무튼 냄비에 물을 붓는다. 계란의 높이보다 더 많이 붓지 않으면 반숙 계란을 만들다 흰자마저 반숙을 만드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다음에는 식초 한 숟갈,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이 또한 껍질을 까기 쉽게 만드는 과정이다.)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물이 끓는 순간부터 반숙은 8분, 반숙과 완숙 사이의 어딘가를 원한다면 10분, 완숙은 12분 정도를 끓이는 것이다.
그다음 재빨리 끓는 물에서 계란을 건져 찬물에 담근다. 찬물에 담가 두면 계란 껍데기 까기가 쉽단다.
10분은 무언가 시작하기 애매한 시간이라고 판단하여 물끄러미 계란이 익는 것을 보았다. 정확히는 익는지 익지 않는지 알 순 없지만 아무튼 뜨거운 냄비 속에서 물의 대류를 따라 움직이는 계란을 보았다. 이쯤 되었나 싶어 시계를 보니 아직 4분 남짓 남았다. 그냥 반숙을 만들까... 요즘 요리를 자주 해서인지 이렇게 그저 음식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불멍 아닌 불멍을 때리는 순간이 잦아졌다.
왜인지 낚시하는 강태공이 떠올랐다. 미끼 없는 낚시를 했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옛날엔 왜 저렇게 쓸데없이 낚시로 시간을 낭비하나 싶었더랬다.
근데 살다 보면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이 너무나도 많다. 이를테면 논문을 제출하고도 근 3-4개월을 기다려야 결과를 알 수 있고 (이것도 사이클이 빠른 컨퍼런스나 그렇다.), 유학 지원서를 넣고 합격 발표도 몇 달을 기다렸고, 대외활동이나 인턴 결과 발표날에는 아무것도 집중 못 한 채로 애꿎은 노트북 F5키만 누르고 있었다. 기다리지 않으면 반숙은커녕 흰 자가 줄줄 흐르는 계란을 얻게 된다. 강태공은 흰 자가 익길 기다렸나 보다.
강태공도 기다리는데 나라고 오죽할까. 내가 뚫어져라 계란을 바라본들 눈빛으로 계란을 익힐 수 없다. 내가 그 자리에 있으나 없으나 반숙은 8분, 완숙은 12분 불문율을 깨지지 않는다. 결국엔 그냥 계란은 불에게 맡겨두고 내 할 일 하는 게 최고다. 그러다 보면 반숙 혹은 완숙을 얻는다.
우리 인생이 계란보다 어려운 건 가끔은 몇 분을 기다려야 반숙인지, 완숙인지 모르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럴 땐 그냥 불에 계란을 올려두고 할 일 하다가 적당할 때에 기웃거려서 확인하고 덜 익었다 싶으면 또다시 기다리는 거다.
나는 낚시엔 도통 관심이 없으니 다른 기다리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Fun Fact: 계란을 회전시키고 손가락으로 멈췄을 때, 계속 회전하려고 하면 날계란, 그냥 멈추면 삶은 계란이다. 날계란은 껍질 내에서 액체가 회전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멈춰도 안에서 액체가 돌아 회전력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