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늘 Jan 28. 2023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떠 침대를 떠나지 않고 그녀와 영상통화를 한 후,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유튜브의 바다를 헤엄쳤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보니 일요일 오전은 지나가있고, 슬그머니 찾아온 배고픔에 마지못해 일어나 토마토 파스타를 해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한 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하루종일 집에 있다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유튜브의 바다에서 서퍼가 될 지경이고, 내일(월요일)이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월요병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일요일에 일을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문 밖을 나섰는데 하늘이 흐렸다. 뉴욕의 날씨가 원체 오락가락하는지라 가방에 매일 우산을 넣어 다니는데, 어제 체육관을 가느라 운동가방에 우산을 넣고는 옮기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오늘 일기예보에선 비 소식이 없었으니 괜찮겠지 싶어 그대로 도서관을 향했다.


그런데 웬걸, 비가 온다.

그것도 세차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주인공인 개츠비는 여자친구인 애슐리와 맨해튼에 내려가 겪는 일련의 우연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해프닝을 담은 영화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이 영화의 감독인 우디앨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참고로 싫어한다.) 영화의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우연’을 만들어 내는 요소 중에 하나가 비다.


어쨌든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공사장 난간 아래에 피해있었는데, 그 길목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나 같은 학생도 있었을 테고, 내 옆은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으로 보였다. 저 먼발치에서 비를 피하려 뛰어 온 가족은, 쫄딱 젖은 서로의 모습에 깔깔된다. 멀리서 들리는 ‘이것도 기억에 남을 거야.’라는 한국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양 느껴졌다.


잠시 학생에서 관광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왜인지 들뜨는 기분이 든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로맨틱하게 들릴 수 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닐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를 피하며 비로소 보이는 뉴욕, 그리고 이 복잡한 뉴욕에서 어떤 사람을 마주칠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세차게 내렸던 비가 거짓말 같이 그쳤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늘 오피스 아워에서 나만큼이나 뉴욕 오기를 꺼려했던 친구를 만났다. 문득 예전에 적어뒀던 이 글이 떠올라 이제야 업로드해 본다. 그 친구도 뉴욕이 조금은 좋아지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상자 밖 생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