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
푸른 사막의 끝에선 자간은 캐숀을 옆에 두고 말했다.
"이제 모험이라면 지겨워. 이 사막을 건너면 집으러 돌아가자."
7월의 석양 같은 황금빛 눈을 가진 사막여우인 캐숀은 주인의 말을 알아듣는 듯 기분좋게 울었다. 자간은 캐숀의 턱 밑을 긁어주며 자신이 떠나온 붉은 사막을 떠올렸다. 여덟 사막을 다스리는 하이칸의 아들로 태어나 자간. 비가 오지 않는 사막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바위보다 단단한 심지와 전갈 독보다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사막의 평범한 잡부도 대륙의 전사보다 강인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물며 만 명을 아래에 두고 있는 하이칸의 아들이다. 누구보다 강한 팔뚝과 곧은 성품을 가져야 했다. 허나 자간은 사막 특유의 검은 피부와 긴 속눈썹 말고는 마치 대륙의 아이처럼 연약했다. 하이칸은 종종 자간을 붙잡고 부족의 주술사, 모디하드가 읽어준 자간의 운명을 이야기해주었다.
"넌 성난 초원을 떠돌다 푸른 사막을 건너는 자가 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마."
하이칸은 강한 믿음으로 무리를 이끌어 온 자였다. 그러나 잘못된 믿음도 배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았어야 했다. 그 방향이 잘못된 체로 말이다. 하이칸은 자간이 강한 전사로 자라날 것으로 믿었고, 모디하드의 예언도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해석했다. 자간이 무리를 이끌고 붉은 사막에 열셋 부족 중 아무도 넘지못한 푸른 사막까지 영토를 확장할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간은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전사와 거리가 멀어졌다. 자간은 또래의 청년들이 칼과 도끼에 신경을 쓰는 대신에 소멸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몸서리쳤다. 그는 아무도 눈 여겨보지 않던 사막의 황혼과 새벽에 서로 다른 4가지 색을 노래했다. 가보지 못한 곳을 궁금해하고 듣지 못한 이야기에 설레는 청년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하는 떠돌이. 아버지는 전사가 아닌 집시로 자랐다고 성을 냈지만, 자간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대륙에선 자신 같은 사람을 두고 방랑시인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렇다. 자신은 시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푸른 사막의 끝에 섰다. 붉은 사막과 중간 대륙의 그 누구도 끝을 보지 못했다던 푸른 사막을 최초로 정복한 것이다. 캐숀과 처음 만난 날, 아홉 수수께끼를 내는 노파의 속임수, 하얀 바위와 다툰 날, 전설 속에만 있다고 믿었던 드라칸을 목격한 날. 자간의 머리속엔 지난 날이 떠올랐다.
"아흔 아홉 살까지 살 거야.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늙은 포도주 향내를 마시고, 소스라치듯 새벽에 깨어나 몇 줄의 그리운 시를 쓸 거야. 그 동안 내가 여행을 다니며 본 이야기들이면 아마 9편의 서사시로도 부족할지 모르지. 그러나 괜찮아. 난 아흔 아홉살까지 살 거니까. 시간은 충분해."
일곱 빛깔을 띈 산양의 털로 꼬아만든 허리 끈를 다시 정비했다. 자간은 이제 곧 푸른 사막을 건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