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번 주제는 사랑입니다. 이 주제가 이렇게 늦게 나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도서관이건 영화관이건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뺄 수 있을까요. 사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쉽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연관되는 영화와 책들이 너무도 많아서 선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저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를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란 이야기를 해볼까, '500일간의 썸머’로 이별 후에를 논할까, 아니면 ‘루비 스팍스’를 통해서 완벽한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앞선 세 후보가 모두 짝이 될 책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한 쌍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도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입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이야기하고 싶은 바가 유사하고,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둘은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지 모두 감명 깊었지만 다시 보기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을 정도입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둘을 다시 찾았습니다.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마지막 장면을 기다리고,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예고를 했다고 해도 슬픔이 다른 감정으로 치환되지는 않으니까요.
먼저 영화입니다. 바로 오늘, 한지민, 남주혁 주연의 '조제'가 국내 개봉합니다. 그 영화의 원작 영화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동명의 단편소설이 원작인데 원작과 결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굳이 단편집을 찾아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대신 영화를 보기 전에 프랑스와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를 읽길 추천드립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조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결말에 대한 두 주인공의 심리를 읽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화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 츠네오가 등장합니다. 호감형으로 잘 생긴 남자입니다. 여자들한테 인기도 제법 많은지 친구들의 질투도 받고 연애관도 가벼워 보이네요. 요즘 츠네오가 관심 있는 여자는 카나에입니다. 학과에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받는 학생으로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대학생들이 나오는 평범한 청춘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조제를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츠네오는 도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기묘한 소문을 듣습니다. 사람 없는 새벽 거리에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다고 말이죠. 그 유모차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야쿠자의 마약 운반책과 같은 흉흉한 소리를 하는데요. 우연히 츠네오가 퇴근길에 이 할머니가 언덕길에서 놓친 유모차를 잡아주고 그 안에 있던 '조제'를 만나게 됩니다.
"유모차를 열어보니 20대 여성이 있었다." 이 얼마나 낯선 문장입니까. 비일상적인 광경에 츠네오가 놀라셔였을까요. 그는 유모차를 집까지 끌어다 주고 또 밥까지 얻어먹습니다. 그러면서 다리가 불편한 손녀와 할머니가 둘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츠네오한테 조제는 아마 신비로운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식칼을 휘두르거나 중국제 총이 갖고 싶다고 하질 않나, 목소리와 말투는 할머니 같고 잡학 다식한 지식이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 요리를 엄청 잘합니다.
츠네오는 조제의 손맛에 빠져 몇 번 더 방문을 하게 됩니다. 빈손으로 갈 때도, 식자재를 가지고 갈 때도 있네요. 그러면서 점점 츠네오는 조제를 이해하게 됩니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할머니가 과보호를 하면서 세상에 대해서 경계심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지킬 칼과 총에 관심이 있습니다. 온종일 할머니하고만 있으니 목소리와 말투는 할머니를 닮게 되었고, 집 안에 있으면 요리를 하거나 할머니가 고물상을 돌며 얻어오는 헌책만 계속 읽으니 자연스럽게 요리를 잘 하고 지식도 많습니다. 또한 조제의 본명은 쿠미코라는 걸 알게 됩니다. 조제는 사강의 소설 속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입니다. 츠네오는 조제가 읽고 싶다고 하여 헌책방을 뒤지고 뒤져 사강의 '신비한 구름'을 구해다 주는 수고도 합니다. (참고로 이 소설은 국내에서도 절판되어 구하려면 츠네오처럼 헌책방을 뒤지고 뒤져야 합니다.)
둘은 어느새 가까워졌습니다. 조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호랑이까지 같이 볼 정도로 말이죠. 조제는 책 속에서 접한 호랑이가 너무도 무서워서 남자친구가 생기면 같이 보러 오기로 마음을 먹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사가 참 마음을 울렸어요. "조제에게는 두려움조차도 허락되지 않았었겠구나." 생각해봐요. 조제는 두려움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들이 제한된 상황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사랑이 과연 찾아올까 괴로워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두려움을 마주하겠다, 저는 이 말이 '00을 하면 00을 해야지' 하는 조건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과 두려움이란 감정들을 느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으로 들려요. 그녀는 만약 자신의 삶에 사랑이 허락되면, 그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둘이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마주하는 장면은 저에게 참 가슴이 막막해지는 장면입니다. 조제의 기쁨이, 그리고 그녀의 슬픈 자기인식이 곧 있을 다음 장면을 예고하기 때문이죠.
영화의 제목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 우리는 조제와 호랑이를 봤으니 이제 물고기를 보러 가야겠네요. 이 슬픈 이야기의 정점은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말을 아끼려고 합니다. 여기서 더 이야기를 하면 영화를 볼 재미가 없어지는 걸요. 그런데 막상 여기에서 끊으려니 저도 너무 아쉽네요.
영화는 두 인물의 감정선을 과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리메이크 버전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한 부분이 요 부분이에요. 일본판에서는 인물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줘서 좋거든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결말이 갑자기 훅 왔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장면, 장면들마다 인물이 어떤 심정인지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결말 또한 조제와 츠네오를 닮았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극적이지 않고 담담하기 때문에 더 슬픕니다. 조제가 결말을 받아드리는 방식과 츠네오의 행동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둘의 마음과 처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봐요. 나라면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지. 그 생각을 하고 나면 둘은 참 자신에게 솔직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서 가장 솔직한 영화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이제 책을 볼까요? 아까 영화 소개를 하면서 프랑스아즈 사강을 언급했었죠? 영화 속에서 사강의 도서는 2편이 나왔었는데, 소개할 도서는 그 둘이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하 브람스)입니다. 동명의 한국 드라마가 있지만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읽었었는데 ‘아! 사랑 따윈 달콤한 환상이야!’ 라고 외치며 한 동안 무력감에 시달렸었어요. 지금은 그 때의 제가 신기하고 서글퍼요. 저는 그 때 남고, 기숙사를 다니고 있었고 연애 한 번 못해 봤었거든요. 오로지 책과 영화들로 혼자만의 감성만 쌓았었는데 그 감성들이 다 짝사랑이고 슬픔이었어요. 어쩌면 그랬을지 신기할 정도로 씁쓸하네요. 시몽처럼 사랑해보고 폴처럼 슬퍼해도 봤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의 저는 타고난 모태 외로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지치도록 슬픈 사랑을 했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는데, 이별을 해본 사람들. 조제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정호승 시인처럼 말한다면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 한 번 마을에 내려오는 걸 이해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소설을 구성하는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요소들은 잘 균형이 맞춰져 있기도 하고 어느 것 한 가지가 두각을 나타내서 나머지 둘을 끌고가기도 합니다. 브람스는 인물들의 감정묘사가 나머지 사건과 배경을 끌고 갑니다.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느날 불현듯 사강에게 쓰고 싶은 결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결말에 필요한 멋진 문장까지 바로 생각났을 거에요. 그러자 사강은 신이 나서 인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 공들여 폴과 시몽, 로제를 창조해냅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로 정해놓은 결말을 말하기 위해 적당히 사건들을 만들지 않았을까. 끝까지 다 읽고나면 몇 개의 사건들이 달라졌어도 이 인물들은 같은 결말을 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 화는 소설 속 주인공만 이야기할게요. 이것만으로 저는 이 책에 정수를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린 것 같아요. 제가 소개드린 인물들이 마음에 드신다면, 이들이 어떠한 사건으로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는 도서관에서 확인해보시겠어요?
먼저 로제, 자유로운 남자입니다. 자유롭다는 표현이 그를 너무 좋게 표현한 것 같지만 어차피 소설을 읽다보면 여러분이 로제한테 생기는 감정이 있을 테네 제가 굳이 미리부터 말하지 않을게요. 그는 철없는 행동을 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로제를 달랠 땐 폴은 그를 남자 중의 남자라고 칭합니다. 확실히 원기왕성한 마초 같은 남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폴, 로제의 자유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39세의 여인입니다. 주인공이지만 요즘 말로 고구마 100개는 먹은 듯한 답답한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이 소설이라는 산을 오를 때 좋은 길입니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을게요.
마지막으로 시몽이 있습니다. 미청년입니다. 방 안에 모든 여자들이, 길을 걷는 여자들이 쳐다볼 정도로요. 사강은 시몽을 정말 인터넷 소설에 나올 법한 완소남으로 그립니다. 여자들이 그를 볼 때 '행복한 눈빛'으로 본다고도 서술할 정도입니다. 그의 나이는 '고작' 25으로 직업은 '수습' 변호사입니다. 그는 순수합니다. 수석 변호사에게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뱉을 정도죠.
세 남녀의 로맨스 이야기 같습니다. 나이차가 나는 여남 커플을 통해서 폴의 고민을 하는 이야기 같죠. 그런데 인물 소개를 대충 보면 고민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폴과 로제는 연인 사이이지만 로제의 바람둥이 기질 때문에 폴은 언제나 괴롭습니다. 그런데 폴의 실내장식 일을 하며 시몽을 만나고, 시몽은 폴에게 반해 그녀에게 구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폴이 로제를 버리고 시몽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이라고요? 맞습니다. 나이가 자꾸만 그녀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런데 폴의 입장에서 반복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은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나이가 아닌 사랑에 대한 경험, 그녀가 여태껏 사랑을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녀는 시몽을 볼 때 단순하게 시몽의 현재 만을 보지 않을테니까요. 폴은 시몽을 보면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책은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또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요? 한 가지 미리 말할게요. 이 소설은 삼각관계나 나이차 커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사랑이 가진 본질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제와 폴은 너무나도 같은 사람입니다.
폴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몽이 던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이 의미심장합니다. 아까 사강한테 결말과 함께 멋진 문장이 떠올랐을 거라고 했죠? 그 문장이 바로 이 질문입니다. 사강도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제목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연애를 반복하다 보면 상대방이 주는 상처에 지치며 어느 순간 포기할 줄도 알게 됩니다. 맞지 않는 취미를 억지로 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숨기커나. 연애를 하면 자신을 상대방에게 맞추는 사람이라면 공감할거에요.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맞추면 자신을 잃게 되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자신과 들어맞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일정 부분은 어느 정도 내가 나를 깎을 필요가 있다고 말이죠. 그렇지만 그 '어느 정도'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이걸 그 누가 알까요. 사람마다 이 부분은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 폴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 아닐까요.
두 영화와 책이 재미있었다면 포스터가 멋진 영화, ‘더 랍스터’를 추천합니다. 독특해요. 영화 속 세상은 45일 동안 커플이 되지 않으면 동물이 된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된다고요? 벌써 놀라면 안 됩니다. 이 설정으로 영화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상당히 독특한 영화지만 또 상당히 직설적인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는 ‘커플이 되지 않으면 죽는다.’와 ‘커플이 되면 죽는다’라는 대립적인 상황을 제시하여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아주 불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이죠.
그러니까 이번 화는 슬픈 사랑을 한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당신의 슬픔을 괴롭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우리는 본래 슬픈 동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