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준비생의 사랑

정예나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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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준비생의 하루는 단순하다. 3,000원 컵밥 메뉴를 고를 때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시간들, 오늘이 똑같이 내일로 복제 되는 시간 속에서 N이 P와 마주친 것은 정해진 운명 같았다.

같은 공간, 같은 교재를 펴고, 같은 강의를 듣는 N과 P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수많은 '같음'을 공유하였다. 시간의 흐름이 통제 된 공간에서 유일하게 계절의 순환을 알 수 있는 사각의 유리창, 겨울이 다시 겨울로 올 때까지 N은 P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겨울이 끝나기 전에 N은 P를 불렀다. N이 그 동안 P를 생각하며 품었던 상상 속에는 해와 달도,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음식도, 깃털처럼 가벼운 햇살과 함께 할 시간들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벌써 공무원 3수생인 N은 막상 입을 열자 마음 속에 말들을 꺼낼 수가 없었다. 모든 바람들은 달콤한 법이다. 그러나 P에게 해야 될 말은 허황 된 바람이 아니지 않는가. N은 그 동안 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당신 이름을 형태소 하나하나 분석하고 당신의 영문 모를 한마디를 독해하고 당신을 공급하는 시장에 수요자가 되어 당신의 자기장에 끌려가는 동안, 당신을 빠져나오는 연립방정식에는 해가 없음을 알게 되고 당신이라는 행정기관에 내 온 감각들이 협동적 집단행동을 벌이기까지

나는 대체 무얼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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