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얀 이삿짐

최정순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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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얼굴은 갓 태어난 어린 새싹만큼 하얗고 둥굴었다.

그 아이는 태양이 민들레의 3번째 잎과 네번째 앞 사이를 가장 간질일 때

찾아와 한참을 그저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햇살보다 더 따뜻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 민들레는

소녀의 방문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민들레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봄보다 노란 꽃잎이 겨울처럼 하얗게 변하는 순간,

민들레는 지상을 벗어나 누구보다 가볍게 하늘을 날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민들레의 숙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소녀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민들레를 아프게 만들었다.


"한번 더 소녀를 보고 싶어."


민들레는 하늘로 떠오르는 이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마음을 그리움으로 가득채워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자기를 지탱하고 있는 잎대를 꼭 붙잡고

친구들이 자기 곁을 떠나는 걸 하나, 둘 지켜보았다.


그러나 남풍과 북풍이 자리를 교대하는 시간이 찾아오자

결국 민들레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안녕, 소녀야."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민들레는 마지막까지 소녀의 모습을 찾고 싶어

이전에 어떤 민들레들보다 높이,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쪽 산이 흰 수염을 기르기를 그만 둘 때

노란 꽃은 이전보다 환한 색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민들레는 소녀의 미소와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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