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김치

박준수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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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 끝났네요.

- 나이가 드니 별게 다 힘들구나. 예전에 30포기쯤이야 금방 해치웠는데 말이다.

팔꿈치까지 바짝 당겼던 고무장갑을 벗었다. 며느리와 둘이서 배추를 양념을 다 묻히고 큰 대야에 모아뒀다.세 식구 먹일 김치로 10포기씩 준비했으니 이제 미리 준비해둔 보관상자에 담아서 보관하면 된다. 오늘까지 온다고 하던 딸이 오질 않아서 그냥 며느리와 둘이서 일을 끝냈다. 아들 놈은 지 아버지랑 옛저녁에 나가서 아직도 안 들어오고 있다. 아마도 읍내 당구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 박서방이 일 땜시 오늘 못 온 것이 아쉽네. 수육 고기 맛난 걸로 사왔는데 말이여.

- 어쩌겠어요. 회사에서 갑자기 불렀다는데 말이에요.

- 요즘 같은 시국에, 번듯한 직장 다니는 것이 보기 좋다만 이렇게 일 하기가 바뻐서야. 젊어 골병들까 걱정이다.

-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김치 맛 좀 보세요.


어렸을 때부터 일 마무리가 시원찮아서 손이 많이가던 아들내미인데 어디서 이렇게 착한 아가씨를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며느리와 둘이서 보관상자에 김치를 꽉꽉 채우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니 처음 시댁에서 김장을 하던 날이 떠오른다.

참, 힘들었지. 힘들었는데. 이젠 내가 며느리를 보고 김장을 하고 있구나. 시집살이라는 것은 어깨가 욱식거리는 일이라고 세상살이라는 것은 참 신산한 일이라 했는데 어느새 몇 번 눈 감았다 뜨니 지난 일들은 낮잠 속 꿈처럼 희미해졌다.


- 하이고, 올해는 비도 오지를 않더니 겨울도 따뜻해서 배추가 힘이 없다, 힘이.

- 그래도 우리 둘이 담근건데 맛있죠?

- 하이구, 그래. 네 말대로 맛나네. 제법 군침 도는 것이 아주 맛난다.


그래, 비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날씨가 돕지를 않아도 이만하면 나름 괜찮지 않은가.

이만하면 나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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