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마음을 두드리다

영화 '유브 갓 메일'과 책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by 도서관 옆자리

블라인드 소개팅을 아시나요? 남녀가 불을 끄고 어두운 방안에서 첫 만남을 갖는 소개팅입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팀과 메리가 이런 식으로 만나는데요. 생각해봐요. 어두운 방 안입니다. 앞도 잘 안 보이는 상황, 두 남녀는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를 알아가야 합니다. 왜 어바웃타임의 감독은 두 남녀의 만남을 블라인드 소개팅으로 했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역사의 시계태엽을 돌려봅시다. 한 400년 전으로 돌리고 사랑의 도시 이탈리아로 떠나봐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40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지금까지도 낭만적 사랑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요? 세익스피어는 이 역사적인 연인의 첫 만남 장소를 가면무도회로 택했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의 배경도, 얼굴도 알지 못한 채 몇 마디 대화와 눈빛만으로 사랑을 기약합니다.


venice-mask-3046771_640.jpg 왜 하필 가면 무도회일까? / 사진제공 Pixabay


자, 보세요. 로맨스 영화 감독과 로맨스 소설 작가가 그들의 주인공들을 블라인드 소개팅과 가면무도회를 통해 만나게 했습니다. 왜일까요?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그 둘의 만남은 다소 로맨틱함이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 아닐까요. 생각해봅시다.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지역 유지의 아들딸이자 미남미녀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하는 것이 뭐가 특별하겠어요.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둘의 얼굴을 가려버리자 상황이 변했습니다. 도대체 둘이 왜? 얼굴도 안 보이는데?


여기서 우리 인간의 뇌는 놀라운 인지 부조화 작용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본능 중 하나인데 인지한 것에 대해서 뭔가 부조화스러운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껴요. 그러면 우리 뇌는 이 불편함을 줄이고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예쁘고 지역 유지면 이해하겠어. 그런데 얼굴을 가렸는데도 반했다고? 이유가 없다고? 세상에. 그럴 리가 없어. 아이고 불편해! 이렇게 불편하면 안 되는데. 그래, 이유가 뭘까. 둘은 외모나 재산에 반하지 않은 거지. 영혼의 떨림을 통해 반한 거야. 운명인거야!


그렇습니다. 가면, 블라인드 데이트, 첫 눈에 반하다 등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포장지입니다. 등장인물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만드는 포장지 말이죠. 다소 서문이 길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서로의 얼굴을 가리고 만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거든요.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영화는 톰 행크스와 캐슬린 켈리가 주연한 ‘유브 갓 메일’, 추천할 책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입니다.


2.jpg 유브 갓 메일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제공

먼저 영화 ‘유브 갓 메일’을 보겠습니다. 98년도에 개봉한 영화로 그 시절 감성이 없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옛날 영화답게 개연성이 살짝 허술해요. 영화를 보고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 정말 정직한 영화죠. 대충 보다보면 다음 장면이 예상가고, 예상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내 마음에 로맨스를 충전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살펴보겠습니다. 캐슬린 캘린, 지역에 작은 아동 서점을 운영하는 분입니다. 어머니 대부터 이어온 서점으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지역 아동들이 좋아하는 서점이에요. 조 폭스, 엄청난 체인점 서점 폭스북스의 사장입니다. 이름을 천천히 다시 읽어봐요. 조 폭스, 조폭스, 그냥 조폭이 여러 명이에요. 이름부터가 나쁜 사람임을 암시하잖아요. 폭스 북스 서점이 엄청나게 큰 대형 체인점이라 화려하고 할인도 많습니다. 그래서 폭스 북스가 한 마을에 생기면 그 마을에 다른 서점들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영화는 캐슬린 캘린의 마을에 조 폭스가 체인점을 내면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설정을 말하면 대충 내용이 상상 갈 겁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슬퍼하는 감성을 가진 여주인공, 성공에 집착하는 남자 주인공. 너무나도 안 맞는 앙숙입니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라는 장르상, 주인공이라는 숙명상,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둘은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로맨스 영화의 결말은 우리가 알고 있어요. 관객들이 팝콘 먹으면서 봐야 할 포인트는 이 부분이 얼마나 달달한지에요. 적어도 우리가 먹는 카라멜 팝콘 보다는 달달해야지 성공적인 로맨스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자, 유브 갓 메일은 이 달달함을 ‘메일’을 통해 전달합니다. 캘린과 조는 사실, 자기들도 몰랐지만, 익명의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옛날에 그런 게 있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PC통신 시절, 누군지도 모르지만 웹사이트를 통해 아이디를 주고 받고 이메일로 대화하는 거에요. 펜팔의 온라인 버전이에요. 둘은 현실에서 만나면 으르렁 거리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낮에는 톰과 제리처럼 으르렁거리다 밤이면 메일 상에서 정답게 이야기하는 둘의 모습은 관객 입장에선 한 편의 희극입니다. 그런데 이 희극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연히 조 폭스가 자신이 메일을 주고 받는 사람이 캐슬리 캘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고, 어느새인가 조 폭스는 캘린에게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 동안 캘린이 조 폭스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거든요. 캘린 입장에서 생각해봐요.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저 사람이, 만날 일도 없는 익명의 사람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방심을 하게 합니다. 에이, 날 모르는 사람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폭스는 캘린의 속마음을 십년지기보다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녀의 순수한 마음에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너무 내용이 영화 같죠? 후반부는 더 그렇습니다. 정직함과 순수함이 무기인 이 영화는 반전 없이 힐링만을 위한 영화거든요. 무엇을 기대하던, 기대를 내려놓으시고 보시길 바랍니다. 영화의 결말은 DVD를 통해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 알라딘 제공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입니다.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이 책을 통해 국내에서도 제법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을 정도로 제법 많이 팔린 책으로 이후 일곱 번째 파도라는 속편까지 나왔습니다. 앞서 유브 갓 메일은 에피타이저고요. 사실은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이 메일이 나옵니다. 왜 자꾸 이 메일이냐고요. 2006년도에 나온 책입니다. 지금이야 메신저 프로그램을 더 사용하지만 이때는 이메일이 활발했죠. 한 번 메일이 활발하던 시절을 상상해봐요. 책은 실수로 잘못 보낸 메일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게 된 남녀가 나옵니다. 뜬금없다고요? 있을 수 없다고요? 그래서 작가는 어떻게 오타가 났는지,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해진 건지, 이 부분에 엄청 신경을 많이 써서 풀어냅니다.


에미는 라이크사의 잡지 구독을 취소하기 위한 메일을 보냅니다. 헌데 메일을 보내면서 라이크(like)가 아닌 라이케(leike)에게 메일을 잘못 보내게 됩니다. 처음엔 그냥 소소한 해프닝이었죠. 에미와 레오 라이케는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면서 넘어갑니다. 하지만 9달 뒤, 에미가 성탄절 단체 메일을 잘못 보내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이어집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에미와 레오는 둘 다 엄청난 필력의 소유자입니다. 에미 로트너가 보낸 성탄절 단체 메일에 대해 레오는 ‘지극히 독창적인 단체 메일’을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고 에미는 레오에게 9달전 메일을 보내며 고객 명단에 실수로 넣었다고 시인합니다. 그리고 38일 뒤, 에미가 또 다시 잡지사 문의 메일을 레오에게 보내자 레오가 아직도 ‘불행한 날’을 구독하고 있냐며 묻습니다. 이번에도 에미는 미안하다며 자신에게 I 앞에 무의식적으로 e를 쓰는 잘못을 한다고 합니다.


이 때 레오 라이케가 처음으로 개인적인 궁금증을 물어봅니다. ‘ei’ 실수에 관한 메일을 보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고 말이죠. 이것이 시작입니다. 에미는 말이 정말 많은 웹디자이너고 레오의 직업은 언어심리학 교수입니다. 레오는 에미의 문장을 통해 그녀의 성격을 추측하고 에미는 레오의 유머감각을 통해 그의 나이를 추측해봅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를 알아가는 추측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책의 매력이 폭발합니다. 이 소설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두 명이 주고받는 ‘메일’을 전부 보여줍니다.


와! 이거 정말 소름 돋습니다. 로맨스 소설계의 혁명이에요. 보통 영화나 소설에선 장면의 전환이 있어요. 해리포터를 볼까요? 책 한 권이 해리의 성장 모든 걸 다루지 않아요. 몇 월 며칠 뭘 먹었고 누구랑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그런 것들을 다 서술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장면들만 비추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빈 사이를 상상합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쉬는 시간에 어떻게 장난쳤는지 등등을요. 영화는 어떻고요? 상영 두 시간 동안 남녀의 일대기를 압축해서 보여주죠. 하지만 새벽 세시는 두 남녀의 처음과 끝, 모두를 보여줍니다. 대단합니다. 독자들이 등장인물들의 모든 대화를 다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고요!


물론 이런 방식의 책은 새벽 세시가 처음이 아닙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되어있습니다. 왜 괴테가 이런 방식으로 책을 썼을까요? 그냥 참신해서요? 그랬으면 괴테가 대문호가 된 것도 그냥 운이 좋아서겠죠. 3인칭의 전지적 작가시점도 아니고, 관찰자 시점도 아니고, 편지라는 내면 고백을 택했기 때문에 우리는 베르테르의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한 젊은이의 심적 고뇌 전부를 볼 수 있었죠. 그래서 독자들은 그만큼 베르테르의 고뇌에 더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공감이 얼마나 심했냐면 당대 젊은인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사회학자 필립스가 유명인의 자살사건 언론 보도 이후, 일반인들의 자살이 늘어나는 걸 보며 베르테르효과라고 이름을 붙였을 정도입니다.


자, 다시 우리들의 책으로 돌아와봐요. 이 소설은 두 인물이 편지를 주고받고 있죠. 거기다 로맨스 장르에요. 세상 어떤 로맨스 소설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모든 교감을 다 보여주나요? 380여 쪽의 분량, 그리 많은 양은 아닙니다만 전혀 모르던 두 남녀가 어떻게 텍스트로 교감을 하는지 전체 과정을 본다는 건, 이건 몰입감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다 안 됩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보다도 더 심해요. 독자들은 두 사람의 메일을 읽으면서 과연 저 둘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argentine-tango-2079964_1920.jpg 탱고는 다리와 다리 사이의 전쟁이라면 이 책은 활자로 추는 탱고! / 사진 pixabay 제공


제가 예전에 탱고에 관한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다리와 다리 사이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활자로 추는 탱고에요. 어쩌면 둘이 그렇게 문장을 가지고 노는지. 문장으로도 춤을 출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을 덮었을 때, 텍스트로 할 수 있는 기예의 끝을 본 듯 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메일을 주고 받는 둘 사이가 뭔가 요상합니다. 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느낌 오잖아요. 이 사람, 왜인지 남자 같은데? 이 사람, 나랑 나이대가 비슷한 거 같은데? 그리고 이 사람, 왜일까, 애인이 없는 것 같은데? 자, 여기까지 말할게요. 어때요? 제가 여기서 끊으니까? 궁금하죠? 다들 지금 무언가 기대를 하죠? 과연 레오와 에미, 둘 다 애인이 없냐고요? 레오는 없어요. 그런데 에미는, 오, 세상에. 남편이 있습니다.


잠깐만. 지금 당황하신 분들이 있어요. 이 소설이 두 남녀의 위험한 사랑을 그린 불온서적이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에미가 결혼했다는 한 수야 말로 작가가 할 수 있는 테크닉의 끝이라고 봐요. 이것 역시 가면과 같은 소설을 위한 장치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수 가문인 설정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 애간장을 아주 타들어가게 만듭니다. 만약 에미와 레오가 그저 청춘남녀였다면 이건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 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둘이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이 책은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둘이 어떻게 됐을까요? 둘은 메일을 떠나서 실제로 만났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은 1단원에 불과합니다. 책은 총 10단원이고요. 나머지 9단원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