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이상인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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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이. 내 이름이다. 어둡고 캄캄한 구덩이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주인집 아들내미인 은수가 날 보며 얼굴과 동글동글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동글이로 지을 것이지 왜 동굴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만 주는대로 사료만 먹고 사는 강아지인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은수가 '동'하고 입술을 쭉 내밀 때와 '구리'하며 벌릴 때 모습이 정겨워보이는 걸로 만족이다.

그래, 내가 무엇을 더 바랄까. 이 집에 온지 9년. 갈수록 바라는 것이 적어진다. 밥을 주면 주는 대로, 산책을 데려나가면 나가는 대로. 아니면 또 아닌대로. 살아가면서 만나는 기쁨과 슬픔 안으로 삭히다 보니, 애처로움 같은 것들도 버무리고 뭉쳐서 단맛을 낼 줄도 알게 되었다. 은수는 날 보며 이제 나이 들어서 움직이기도 불편해 한다고 하지만 틀린 말이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야 작은 일에도 얼굴이 벌게지며 부끄러웠지 이젠 어떤 세파에도 물렁물렁하게 대처할 수 있다. 괜히 아둥바둥 움직여서 무엇을 할까. 이제 바라는 거라곤 지상에 마지막 남은 등불처럼 오래 세상을 깜박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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