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만큼 '판타지'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평생 판타지의 힘을 믿으며 생태주의, 반전주의, 꿈과 동경, 정체성의 확립과 자립 등의 일관된 주제 의식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독창적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지금은 다소 그 위상이 낮아진 것 같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내게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은퇴와 번복을 여러 차례 반복했던 그가 머지않은 미래에 신작을 내놓는다는 기사를 접하며 그의 영화 세계를 다시 반추해보았다.
일본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열렬한 팬이었던 어린 미야자키는 고등학생 때 일본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 <백사전>을 보고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만, 그가 <백사전>에 감명받았던 이유는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영상미나 운동성 때문이 아니라 어린 여자 주인공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다(그의 작품이 언제나 어린 소녀의 서사로 그려지는 것은 <백사전>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후, 미야자키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전신인 토에이 동화에 들어가 만화에서는 불가한 애니메이션의 동작의 즐거움을 발견하며 그 잠재성을 인지하게 된다. 8년간 재능 있는 애니메이터들과 교류하고 기술을 익혀 토에이 동화의 전설적 존재가 된 미야자키는 그곳에서 만난 다카하타 이사오와 훗날 스튜디오 지브리를 공동 설립하기에 이른다.
미야자키는 작품을 통해 (때로 소박하게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견지해온 인도주의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의 어머니가 한 말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인간에게 희망은 없어."이다. 그에게 세상은 전쟁과 폭력, 그리고 탐욕의 공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겨우 네 살이었던 그는 이미 두 눈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폭력성을 목격한 뒤였다. 특히, 폭격을 피해 도망치던 중 차에 태워달라는 한 여자의 간절한 요청을 부모가 매몰차게 거절한 사건은 미야자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심지어 그 여자는 어린 소녀를 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군에 뇌물을 주고 결함 있는 부품을 팔며 전쟁으로 돈을 버는 무정부주의자였다. 미야자키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동안 군수산업에 기대 부자가 됐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그 귀한 휘발유를 써가며 트럭을 몰아 탈출했고, 태워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외면했다는 사실은 네 살짜리 자아에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말. "차를 세우라고 말할 네 살배기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겠지만, 만약 그런 아이가 존재해 차를 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미야자키의 도덕적 상상은 그가 만들어온 캐릭터들의 탄생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명백하게도 그에게 창작의 동력은 죄책감이다. 그는 폭력적인 세상과 과거의 트라우마 속에 몸부림치며 도덕을 실천하는 고독한 예술가다. 그 번민의 괴로움 속에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다. "삶은 어둠에서 빛나는 빛이다."
5. 벼랑 위의 포뇨 (Ponyo On The Cliff, 2008)
<벼랑 위의 포뇨>는 미야자키의 작품들 중에 가장 쉽고 명료한 작품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다섯 살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러니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이 분다> 같은 작품들처럼 역사적 배경이나 첨예한 사회 문제를 구태여 끌고 들어올 필요는 없다. 마냥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시종일관 미소를 띄며 즐기면 된다. 그리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일명 '포뇨송'을 따라부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족할 것이다. 분명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포뇨'의 열렬한 팬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불현듯 떠오르면 그때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 삶에서 그런 영화 한 편씩은 있어야 팍팍한 삶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내게 <벼랑 위의 포뇨>는 그런 영화다.
그저 편하게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굳이 딱딱하게 파헤쳐 보자면, <벼랑 위의 포뇨>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공존 가능성을 놓고 이어진 질문(<천공의 성 라퓨타>)과 대답(<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어 그 방법론에 대해 설파하는 영화다. 미야자키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비인간이 인간의 언어와 행동 양식을 점차 학습해 나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그려나간다(이 일련의 장면들은 너무나 아름다워 일종의 해방감마저 든다). 긴 동화(同化)의 과정 속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의 변주로 등장하는 세 개의 성, 예컨대 바다의 마술사가 거주하는 해저성과 단란한 소스케 가족의 집, 그리고 물에 잠긴 양로원은 이 영화가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함께 '성'(Castle) 3부작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4. 천공의 성 라퓨타 (Laputa: Castle In the Sky, 1986)
<천공의 성 라퓨타>는 자연이 인간의 탐욕을 정화한다는 미야자키의 생태주의 미학이 거의 극단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으로, 황홀하지만 못내 씁쓸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적이기도 한 절경의 장면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영화는 거듭하여 인간이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있는지, 평화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묻는데, 이 힐문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러 회답된다. 요점은 도덕적 공동체의 연대가 가능하다면 자연과 인간은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저주가 풀리고 마침내 하늘을 날게 된 하울의 성이 천공의 성 '라퓨타'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것은 두 작품의 연계성을 고려하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극장 애니메이션 데뷔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차기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성공시킨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고 호기롭게 <천공의 성 라퓨타>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적인 첫 히트작은 <마녀 배달부 키키>였다. 미야자키는 <천공의 성 라퓨타>와 그 다음 작품 <이웃집 토토로>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괴로워했다. 그가 <마녀 배달부 키키>를 만들며 무엇보다 '히트작'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천공의 성 라퓨타>는 평자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걸작으로 추앙받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이어 비행의 모티프를 야심차게 구현한 <천공의 성 라퓨타>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행의 해방감보다 정부군과 도적 떼의 추적으로부터 소녀(시타)를 지켜내려는 한 광부 소년(파즈)의 숭고한 사랑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끝내 당신의 가슴은 이 감동적인 사랑에 먹먹해질 것이다.
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Nausicaa Of The Valley Of Wind, 1984)
미나마타 해변의 인근 공장에서 오염수를 방류한 사건은 일본에서 가장 끔찍한 환경오염 사태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미나마타병'에 걸려 죽거나, 마비 증세에 시달렸으며, 누군가는 영구 장애를 얻게 되었다. 미나마타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간 일본에서 관찰된 적 없는 물고기 떼가 미나마타 해변에서 유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연의 자정 능력은 미야자키에게 엄청난 영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특유의 자정 능력을 선보이는 부해를 창조해냈다(자연의 자정 능력은 미야자키 세계관의 요체에 해당한다).
당시 일본의 극장 애니메이션 산업에는 일종의 관례가 있었다. 극장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원작으로 삼을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이 있어야 했다. 원작이 없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려던 미야자키와 그의 영원한 파트너 스즈키 도시오는 이 난관에 부딪히며 좌절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스즈키는 자신이 편집자로 있는 월간 만화잡지 <아니메쥬>에 미야자키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화로 연재할 수 있게 도왔다. 이후, 쏟아지는 폭발적인 반응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인간과 자연, 기술 문명과 원시 공동체 사이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스타일의 표본으로서, 만약 그의 작품 세계를 면밀히 탐구하고 싶다면 가장 주의깊게 봐야 할 영화이다.
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
미야자키는 '잃어버린 10년'으로 축약되는 당시 일본의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국에 대규모 건설 사업을 벌이던 정부를 보며 "온 세상이 콘크리트로 덮였다."라며 개탄했다. 자연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던 생태주의자로서 미야자키는 그것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가공할 위력과 그 함정에 빠져 탐욕에 영혼을 팔고, 약자를 누르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렇기에 영화에는 버블 경제를 배태시킨 기성 세대의 반성과 미래 세대에 대한 사과가 통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미야자키는 10년간의 긴 추락에도 불구하고 미래 세대에게 부디 자본주의의 함정에 맞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떳떳하게 자립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름다운 건 그 진심을 담을 줄 아는 미덕 때문이다.
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다. 미야자키는 자본주의와 생태주의라는 국가적, 이념적 차원과 어린 소녀의 정체성 확립과 자립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를 병치시키고, 이를 화려한 미장센과 상징물로서의 소품들을 활용하여 그야말로 탁월하게 연출해 나간다. 만약 미야자키의 진가를 느끼고 싶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1. 이웃집 토토로 (My Neighbor Totoro, 1988)
스튜디오 지브리의 메인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가 "솔직히 그때 세대는 모두 유럽에 미쳐 있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웃집 토토로> 이전까지 미야자키의 영화들은 전부 유럽의 풍경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 경제와 일본 국민이 싫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는 미야자키는 <이웃집 토토로>에 이르러 일본의 부정적 일면만 바라보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일본의 문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용하게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의 배경과 서사를 그려나갔다. <이웃집 토토로>는 <바람이 분다>와 함께 미야자키의 가장 사적인 영화다.
아니메 연구가 수잔 네이피어는 "그들이 자라온 초록 터전은 처음에는 전쟁으로, 전쟁 후 대대적인 도시 개발 사업이 시작됐을 때는 굴착기와 불도저로 송두리째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고층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다. 과거와 단절된 전후 일본인들은 역사에서 추방된 영적 고아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이웃집 토토로>의 시골 풍경은 미야자키가 '영적 고아'가 되기 전 짧게나마 존재했던 유토피아이자 동경과 노스텔지어의 감각이 스며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때문에 이곳에 적대자는 없으며, 오직 도덕적인 인간들과 아름다운 풍광만이 존재한다.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이상적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당신은 분명 자신의 숨겨진 도덕적 이상에 대한 욕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