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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24. 2023

<고독한 추적> <암흑가의 두 사람> 알랭 들롱의 연기


<고독한 추적> <암흑가의 두 사람>, 알랭 들롱의 연기


<고독한 추적>
<암흑가의 두 사람>


알랭 들롱을 처음 마주했던 건 장 피에르 멜빌의 걸작 <고독>을 봤을 때다. 들롱은 '세기의 미남'이라는 수식어로 쉽게 설명되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표면적 외형이 아니라 그 외모에 배어 있는 고독의 관능과 폐쇄적 카리스마다. 그는 이러한 무기들을 바탕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공백의 연기를 선보였다. 때문에 관객은 그가 맡은 인물의 심리와 정신세계를 스스로 추측하고 상상해야 하는 능동적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연기 스타일은 장 피에르 멜빌과 협업한 일명 '알랭 들롱 3부작'-<고독>, <암흑가의 세 사람>, <형사>에서 정점에 이른다. 후기로 갈수록 물샐틈없는 형식미를 강조했던 장 피에르 멜빌의 경향에 따라 가장 미니멀하고 건조하게 연출된 <형사>에서 들롱은 무표정 상태의 건조한 시선 하나로 사랑을 표현한다.


<고독한 추적>에서 들롱은 본인의 차가운 연기를 다시 부활시킨다. 비시 정부 하에 유대인 탄압이 지속되던 때, 갑자기 유대인 누명을 쓰게 된 로베르 클라인이 그 배후와 원인을 밝히기 위해 뒤를 추적하는 이야기에서 들롱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그 뜨거움을 식히고 외려 쓸쓸한 해명의 과정이 산출하는 고독감을 온몸으로 흩뿌리는 데 힘쓴다. 그로 인해, 이야기는 한층 깊어지고, 단일한 정체성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 그리고 나치의 불가해한 메커니즘에 대한 사유가 가능해진다.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 들롱은 위와 상반된 연기를 펼친다. 특별히 고독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막 출감한 은행털이범 지노 역을 맡은 들롱은 평상적 톤으로 외형과 성격을 구축한다. 멜빌의 영화에서 시종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들롱은 여기서 쉽게 표정을 노출하고, 충분히 말을 하고, 큼지막한 동작을 취하며 상대적으로 가볍고 친근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전략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전복된다. 지노는 출감 이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은 형사 그와트로로 인해 도저히 일상적 삶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와트로가 자신의 아내마저 건들자 지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살해한다. 그렇게 지노는 사형 선고를 받고 단두대에 오른다. 대망의 마지막 사형 장면에서 들롱은 그간의 연기 방식과 달리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고 별다른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연기했던 사무라이의 비장한 침묵과 무표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순간 지노는 앞의 지노와 전혀 다른 인물이 된다. 단두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농축된 불안은 여태 들롱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다. 요컨대 들롱은 침묵으로 말하고, 무표정으로 표정을 짓고, 눈으로 내면을 표현한다. 그는 최고의 무성영화적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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