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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24. 2023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알프레드 히치콕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알프레드 히치콕


<까마귀>
<오르페브르의 부두>
<공포의 보수>
<디아볼릭>


스릴러 장르의 대가들이 항상 그렇듯 클루조 역시 히치콕과 자주 비교되는데, 둘의 서스펜스 직조 방식은 다소 다르다. 관객과 등장인물에게 제공되는 정보량에 차이를 두어 서스펜스를 직조하는 히치콕과 달리 클루조는 행위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성을 그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산출한다. 예컨대, 히치콕은 <오명>에서 미국 정보부 요원 데블린이 나치 스파이단이 보유한 우라늄 가루를 훔치는 장면 사이에 점차 줄어들고 있는 연회장의 와인 개수를 삽입한다. 와인이 동나게 되면 와인 개수를 충원하기 위해 누군가 데블린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와인 창고로 가게 될 것이다. 데블린은 이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해당 쇼트를 제공받은 관객은 시간의 촉박함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다른 예로, <사보타주>에서 어린 소년 스티브는 영문도 모른 채 폭탄이 실린 새장을 피카디리 광장으로 운반한다. 그는 폭탄이 터지는 순간까지 그것이 필름인 줄 알고 있다. 피카디리 광장으로 가는 그의 여정은 여러 이유로 계속 지연되는데,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이 폭탄인 줄 알고 있는 관객은 그의 발걸음이 중단될 때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에 극한의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히치콕은 걸리느냐 마느냐, 터지느냐 마느냐의 비교적 단순한 상황을 최대치의 장르적 쾌감 속에 녹인다. 히치콕이 작정하고 만든 서스펜스의 경우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른 맥락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그 자체로 관객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반면, 클루조는 <공포의 보수>에서 조금만 흔들려도 폭발해버리는 니트로글리세린이 실린 트럭을 운전수들이 목숨을 걸고 운반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운전수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 이 무시무시한 트럭을 가지고 좁은 산길을 지나고, 브레이크 없이 속력을 내고, 썩은 나무로 지어진 간이 지형물에서 U턴을 하고, 길을 막고 있는 바위를 폭발시키면서 그 파편이 트럭에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며, 그것도 모자라 바퀴가 절반 이상 잠기는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로써 관객은 일련의 비극적 과정을 통과하면서 인물들이 왜 그토록 위험천만한 행위를 지속하는지, 그 운명론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때 부각되는 것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변변치 않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참담한 현실과 이를 이용하는 자본가의 악랄한 착취에 관한 뚜렷한 정치적 태도다. <디아볼릭>에서도 클루조는 교장 노릇을 하는 폭압적인 남자와 그의 비열한 정부에 의해 내면을 살해당하는 가련한 아내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억압적 구조는 비단 그의 아내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가 머무는 학교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가해진다. 요컨대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장르 안에서 관객과 벌이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라면, 클루조의 그것은 사회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뚜렷한 정치적 도구다.


또 하나의 차이는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많은 경우 감정의 서스펜스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현기증>에서 히치콕은 사랑하는 여인 매들린이 종탑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형사 스카티 앞에 그녀와 똑같이 생긴 의문의 여자 주디를 등장시킨다. 그리고는 곧 그녀와 매들린이 동일 인물이었으며, 엘스터라는 남자가 그의 아내를 성공적으로 죽이기 위한 계획에 스카티가 휘말린 것임을 알려준다. 이때부터 스카티는 사랑과 복수심이라는 두 가지 감정에 매몰되어 주디에게 사랑을 주는 동시에 한편으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 이 일련의 과정은 사랑 특유의 설렘과 간절함으로 시작해 죽음이 내뿜는 처연함으로 종결되며, 좀처럼 쉽게 진정되지 않는 감정적 여진을 남긴다. 히치콕은 <현기증> 외에 <살인>, <오명>,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의 영화에서도 서스펜스를 멜로드라마에 안착시켜 진한 감정적 여운을 축조한다. 클루조는 그런 면에서 확실히 열세다. <까마귀>, <오르페브르의 부두>, <디아볼릭>에 멜로드라마적 정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감정이 산출하는 애타는 마음과 그것의 처연한 면모는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담긴다. 클루조는 그 이면에 잠재한 질투, 집착, 죄의식 등의 암울한 비전에 천착하며 비극적 정조를 강화하는 데 사활을 건다.






[2022년 6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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