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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28. 2023

<휴일> <귀로>, 전설적인 감독 '이만희'


전설적인 감독 '이만희'


<귀로>
<휴일>


이만희 감독은 한국 영화를 논할 때 흔히 거론되는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 등의 60년대 거장들과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의 현대 감독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임권택 감독에 비해 덜 조명된 감독이다. 그러나 평론가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전설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인다. 비록 그의 최고작으로 칭송받는 <만추>의 필름이 소실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 게 개탄스럽지만 남아 있는 작품들만으로도 그의 재능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휴일>과 <귀로>에 나타나는 이만희 감독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사실적인 심리 묘사라 할 수 있다. 이만희 감독은 고밀도의 다층적인 이야기를 내세우기보다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의 심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그 내적 딜레마로 인한 심란함과 고독감을 조금씩 추출하는 데 방점을 둔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인물의 대사로 직접 언급하기보다 이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일련의 행동과 표정들의 절묘한 결합, 그리고 이를 감싸는 쓸쓸한 배경의 정취를 통해 구현한다. <휴일>에서 돈 없이 하루를 버티던 허욱이 여자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를 공원에 남겨두고 떠날 때, 그들의 황량한 내면을 은유하는 모래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그 모래 위로 허욱의 외투가 힘없이 떨어지는 부감 쇼트는 그러한 이만희 스타일의 표본이다. 또 여자 친구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낙태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절망감에 휩싸인 허욱이 아무 말 없이 고목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이내 길거리를 처량하게 배회하는 일종의 무성 몽타주는 이만희 스타일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만희 감독의 최고작으로 심심찮게 거론되곤 하는 <귀로>는 그야말로 인물의 내면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다듬고 조율할 줄 아는 그의 완숙한 터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6.25 전쟁에서 하반신 마비가 된 남편을 14년 동안 간병하던 아내가 그의 소설이 연재되는 신문사의 신입사원과 불륜을 저지르며 겪는 내적 딜레마를 다룬다. 인물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성적 욕망을 거세당한 중년 여성이 자기 욕망과 사회의 도덕 사이에서 고뇌하는 불륜 영화로 단순화할 수 있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전쟁 이후의 암담한 현실(남편의 마비)이라는 숙명 속에서 개인의 존재론적 욕망을 실현하는 데 끝없이 실패하고 마는, 그 처절한 시대적 징후를 탁월하게 응축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귀로>는 내레이션이 중요한 형식적 특징이면서, 바람난 유부녀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며 끝나는 정통 멜로드라마라는 점에서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떠오르게 하고, 현실을 억압하는 구시대(6.25 전쟁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신시대(명확한 계획 없이 일을 저지르고 보는 신입사원) 사이의 고뇌를 다룬다는 점에서 마이클 니콜스의 <졸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귀로>는 두 영화에 없는, 이만희 감독만의 인장이 짙게 묻어 있다. 신문사에서 신입사원과 재회한 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여자와 고민 끝에 그녀를 찾아 나서는 남자의 만남 몽타주, 그리고 서울역 앞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그를 두고 고민 끝에 남편에게 돌아가는 여자의 이별 몽타주, 그러나 남편에게 버림받아 울면서 뒤늦게 교회로 향하는 재회 몽타주, 이 세 개의 몽타주가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위의 두 번째 몽타주 사이에 삽입된, 차선이 없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서울역 앞 차도의 광경을 여자가 내려다보는 쇼트다. 이만희 감독 특유의 사실적 미장센이 재현된 이 쇼트는 남편과 신입사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탁월하게 은유한다.


요컨대 인물의 메마른 내면, 복잡한 심리, 깊은 고독감을 재현하는 미장센과 그 안에서 황홀한 매혹을 산출하는 무성영화적 몸짓들의 표현 방식에 있어 이만희 감독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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