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스텔로 Mar 27. 2023

<복수는 나의 것>, 이마무라 쇼헤이와의 첫 만남


<복수는 나의 것>, 이마무라 쇼헤이와의 첫 만남



1963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극악한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키 류조의 동명의 실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복수는 나의 것>은 교활한 여우와 사나운 맹수를 결합시킨 듯한 주인공 에노키즈 이와오의 개인적 여정을 따라가며 그 풀리지 않는 행적의 동기를 추적한다. 그러나 그 여정은 자본에 대한 탐욕과 폭력에 대한 갈망, 폭발하는 성적 욕망이라는 어두운 단면을 점화할 뿐 그 안에서 이와오의 사회적, 개인적 동기를 발견하는 데 실패한다. 그나마 가장 그럴 듯한 이유는 위선적이며 비굴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충분한 결론은 아니다. 한 마디로 텅 빈 내부. 그 안에서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는 공허의 인간. 에노키즈 이와오에 대한 집요한 탐문은 결국 이해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긴 탄식으로 이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배우라는 존재에 싫증을 느껴 70년대 다큐멘터리에 천착했던 이마무라 쇼헤이의 극영화 복귀작인 만큼 영화는 시종 다큐멘터리적인 냉철한 터치로 재현되며 그 비정한 결의가 한층 강화된다. 이와오가 살인을 마치고 피 묻은 손을 자신의 소변으로 닦는 장면과 이와오의 아내가 온천탕에서 시이버지를 유혹하는 장면, 특히 이와오에게 곧 살해당할 하루의 어머니 히사노가 계단을 올라갈 때 그 옆의 어두운 공간에서 그녀와 비슷한 연배인 이와오의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스윽 걸어 나오며 두 장소가 전환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위대한 장면이다.


속을 알 수 없는 미궁 같은 인물인 에노키즈 이와오에게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정말 죽이고 싶은 자는 정작 죽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두 명의 살인자-이와오와 히사노가 등장한다. 히사노가 염원 끝에 어머니를 살해하고 만족감을 얻은 반면, 이와오는 가장 혐오하는 존재인 아버지를 끝내 죽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난반사적 살인을 저지르는 겁쟁이다. 봉합되지 않고 엇나가버린 가족의 붕괴는 이와오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인물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따뜻한 보수주의자 오즈 야스지로의 강력한 안티테제가 되길 자처하며 쇼치쿠 영화사를 박차고 나왔던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는 그전의 전통적인 일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파국과 폭력과 어두운 본능이 뜨겁게 뒤엉키며 여과 없이 분출되는 짐승들의 격전지다.






[2022년 7월] 무더위 속에 만난 영화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조던 필의 세 영화, <겟 아웃> <어스> <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