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누적된 기억들의 총합이 아니냐는 <블레이드 러너>의 질문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블레이드 러너>가 질문을 던지며 끝나는 반면 <애프터 양>은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며 끝난다는 점이다. 코고나다는 비인간의 기억을 더듬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한 남자(제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극의 초반, 제이크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미래의 운송 수단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안에서 그는 가족과 하나의 프레임에 담기지 못하며 그들과 계속 단절된다. 대개 하나의 쇼트에는 하나의 인물 혹은 두 존재(딸과 '양'이라는 안드로이드)만 담기고, 차 안의 인물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보도록 편집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동차의 좌석 구조가 마주 보고 앉아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실제로 마주 보고 앉아 있고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에도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자기만의 쇼트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제이크는 인간이지만 어떤 안드로이드보다 기계적이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시종 표정 변화가 없고, 느릿느릿 움직이며, 안드로이드가 그러하듯 잠을 자지 못한다(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다르게 그의 자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안드로이드 '양'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 가장 인간적이다. 제이크는 어느 날 오류가 생겨 양이 작동을 멈추자 그가 소중하게 여긴 하루의 짧은 단편 기억들을 재생시킨다. 그 기억들은 주로 풍경이나 과일 등의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인간에게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의 단편들이 그에게는 아주 귀중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제이크는 그러한 단편들을 더듬다가 양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를 보게 되면서 천천히 깨달음을 얻는다. 사실상 양에게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전가했던 제이크는 어떤 인간보다도 성숙하고, 감정적으로 충만하며,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했던 양의 일생을 통과하면서 다른 인물로 거듭난다. 새벽마다 물을 마시러 양과 함께 거실로 나왔던 딸의 옆에는 이제 제이크가 있다.
코고나다는 잔물결 같은 고요함에 서정적인 생경함을 더해 독창적인 소우주를 만들었다. 화면비의 변화와 버퍼링을 통해 현실과 기억, 인간의 기억과 안드로이드의 기억을 대조시키는 동시에 은밀히 그것들을 연결하는 대목은 그의 탁월한 역량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애프터 양>은 눈을 감고 편안히 자기 속으로 빠졌다가 어느 순간 삶의 진실을 깨달은 듯 뭉클해지는 명상처럼 관객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어 나지막이 파동을 일으킨다. 이 잔잔한 감동에서 헤어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