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무명 감독'으로 알려진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보스턴 교살자>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데이빗 핀처의 <조디악>으로 이어지는 범죄 수사 영화의 원형과도 같은 작품이자 불후의 걸작이다. 실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큐어>를 만들 때 <보스턴 교살자>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 범죄 수사 영화로서 뛰어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말할 것도 없고 탁월한 각본, 능란한 연출, 실험적인 편집, 경이로운 연기, 치밀하게 구성된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보스턴 교살자>는 그야말로 모든 영역에서 최상의 상태를 구현한다.
<보스턴 교살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화면 분할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극의 초반부, 어둠에 가려져 있는 어떤 형상의 실루엣과 우편물을 받지 않는 이웃이 걱정되어 이웃집 문을 열어보는 주민의 모습이 각각 왼쪽과 오른쪽 화면에 분할되어 나타난다. 어둠에 둘러싸인 형상에 대한 미스터리는 그것이 보스턴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당한 시체의 발이라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적으로 종결된다. 이로써 관객들은 살인과 발견이라는 두 화면 사이의 관계성을 학습하게 되는데, 리처드 플레이셔는 이후 그러한 관계성을 다른 차원의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한쪽에는 피해자가 될지 모를 여성을 다른 한쪽에는 범인의 시점 쇼트를 배치하여 두 화면의 합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내포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살인자와 피해자라는 관계성이 성립되는 순간 미스터리 대신 손에 땀을 쥐는 서스펜스가 작동되기 시작한다. 리처드 플레이셔는 화면 분할이라는 편집 기술만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양면을 완숙하게 오가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을 거듭 창조해낸다.
살인자와 피해자라는 구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실험적 연출은 후반부에 드러나는 범죄자의 상태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경찰에 잡힌 그는 곧 충실한 가장과 사악한 살인자라는 이중 자아를 가지고 있는 환자로 밝혀진다. 선한 인물로 그려지는 전자의 남자는 후자의 행적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후자의 남자가 저지른 끔찍한 행적으로 인해 범인이 되고 사랑하는 가족과 완전히 분리된다. 하나의 스크린에 나란히 배치된 살인자와 피해자의 화면 구도는 한 인물에 공존하는 두 자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얽혀 있음을 시사한다. 악한 자아는 범죄자이지만 선한 자아는 피해자다.
이러한 전략은 서사 구조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미스터리와 그를 잡기 위한 수사가 주를 이루는 초반부를 지나 중간점에 이르면 영화는 누군가 TV로 정치 뉴스를 보고 있는 오프닝의 구도를 반복함으로써 사실상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 이 두 번째 영화의 오프닝에서 리처드 플레이셔는 미스터리의 대상이었던 범인을 당당하게 등장시키며 서사의 대전환을 이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붕괴된 미스터리의 자리를 서스펜스가 충분히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인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잡히고 후반부는 거의 그를 신문하는 내용으로만 구성된다. 말하자면 범인을 잡는 것보다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그의 분열된 자아를 논리적으로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범인의 분열적 상태는 작중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벌어졌던 1960년대 미국의 분열적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플레이셔는 범인의 정체를 탄로하는 것보다 그러한 사회적 분열 상태를 야기한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후반부 신문 장면에서 리처드 플레이셔는 이중 자아 사이의 사투를 고요한 엠비언트와 하얀 벽지, 두 자아의 대립을 보여줄 수 있는 거울 사이에 밀어 넣어 거의 질식할 것 같은 공기를 만들어낸다. 마침내 자기 내면의 악한 자아를 인지하고 그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기억해낸 선한 자아는 내면의 살인자가 행한 범죄를 모노드라마의 형태로 재현한다. 롱 테이크로 촬영된 이 기념비적인 장면은 섞일 수 없는 두 자아가 합쳐지는 끔찍한 혼란과 함께 분열된 두 자아가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으로 온전히 완성되는 기이한 안정감을 동시에 담아낸다. 근래에 본 최고의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