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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Jul 26. 2021

재활치료사

마음을 치료하는

K.S.J.


 육십 대의 그는 만성 신부전 5기로 정기적으로 투석을 하던 환자였다. 그는 팔에 있는 동정맥루로 투석 도중 혈압이 떨어져 패혈성 쇼크 의심으로 중환자실에 왔다. 패혈성 쇼크는 병균이나 감염 등을 우리 몸이 반응하는 항염증 기전 중 하나인데 불특정 온 몸의 혈관이 이완하면서 장기부전이 올 수 있고 혈압이 뚝뚝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의식은 아직까지 멀쩡했지만 혈압이 60/30까지 떨어지며 감염내과 교수님은 승압제를 사용하자고 했다. 고용량의 노르에피네프린과 혈관확장제 바소프레신을 사용하면서 혈압은 100에 60으로 잡히고 균 배양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선제적으로 항생제와 쇼크 방지용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혈관수축제인 바소프레신을 사용하면서 말초 혈관의 혈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환자의 생명이라는 입장에서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하는 최악의 경우의 수 보다는 낫겠지마는, 말초의 혈액순환이 떨어지면서 손발가락이 시리고 저리고 아프고,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교수님께 알렸지만 급성기의 패혈성 쇼크로 인해 약을 줄일 수 없었고,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워머와 두터운 이불을 적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루가 지나 금방 항생제가 들었는지 혈압이 호전되며 승압제를 감량했지만 말초의 혈액순환 장애 후유증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쇼크 치료를 받느라 투석을 받지 못해 혈중요소수치와 크레아티닌 수치가 상승하고 대사성 산증이 있었기에 교수님은 투석 대신 지속적 신투석요법(CRRT)를 시작하자고 했다. 교수의 능숙한 솜씨로 왼쪽 대퇴부에 굵은 카테터가 삽입되고 CRRT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며칠동안의 침상에 누워 꼼짝없이 지낸 그는 기력이 쇠하고 지쳐보였다. 아직 혈액순환이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것조차 힘겨워했고, 방에 설치된 컴퓨터로 틀어주는 Youtube Music마저 거절했다. 오랬동안 침대에 누워있었기에 재활의학과 협진으로 재활 교수님이 간단한 문진을 하고는 물리치료사가 온다. 


 중환자실에 자주 들락이는 남자 물리치료사 선생님 뒤에 흰 옷을 입은 낮선 여인이 보인다. 수줍어하는 폼을 보아하니 실습을 나온 학생 같았다. 마침 마지막 CRRT치료를 끝내고 조영제 CT를 촬영하고 돌아온 참이었기에 거추장스러운 기계를 다 떼어낸 상태였고 나는 혼쾌히 들어오라고 했다. "재활치료실에서 왔습니다" 

내가 CRRT 기계의 세트를 뜯어내 정리하는 와중에 재활치료사가  환자의 발을 움켜쥐자 

 "으악!"  순식간에 비명과 내 머리속의 아차 싶은 생각이 동시에 지나쳤다.

 "이 분 말초 순환장애 때문에 엄청 아파하실거에요. 먼저 말해준다는 게 경황이 없었네요."

 재활치료사는 환자와 말을 맞추기 시작했다. "발 끝을 잡으면 아프신거죠? 여기 발목은 어떠세요? 그러면 제가 발목을 잡고 할게요." 


 


 서글서글한 치료사는 재활치료를 하는 그 어색할 수 있는 시간에 걸맞는 입담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실례일 수 있지마는, 간단한 나이 통성명부터 자녀들은 뭘 하는지... 며칠동안 통증과 외로움에 시달렸던 그는 신이났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글쎄 내 딸 둘이 있는데 하나는 연구원으로 잘나가. 글쎄 효도한다고 집 사준다고 하더니 진짜 2년 만에 집을 사주더라고. 둘째 딸은 일본으로 갔는데 거기서 일본인 남자친구를 사귀어가지고... 예비사위가 일본 사람이라 걱정했는데 엄청 성격도 좋고 싹싹하더라고." 

부모는 어딜가든 역시 자식농사 자랑이다.


 잠깐의 재활치료 시간일 지 모르지만 재활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면회시간 다음으로 환자에게 밝은 웃음을 준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는 약해진 육신보다는 마음을 다독이는 재활치료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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