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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Aug 22. 2021

프리셉터

O.J.I


 나의 첫 프리셉터는 동그란 얼굴에 다부진 눈빛과 붉은빛 연지를 칠한,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돈된 깐깐하고 완벽한 선배였다. 나이 차이였을 지 그의 호탕한 이미지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프리셉터가 정말 무서웠다. 그럼에도 어서 일을 잘 해서 예쁨받고 싶어 부던히... 사실은 노력하는 척 하면서 설렁설렁 했던 것 같다.


 군에 몸을 담고 있던 그였지만 군율의 틀 안에서도 할 말 할 줄 아는 강단있는 성격이었다. 계급과 기수라는 엄격한 계급 사회에서도 한 점 흐트럼 없었고 할 말을 할 줄 알았다. 병사와 후배들에게 험담하는 - 소위 '태우는' 일이 없었다. 프리셉티를 포함해서, 내가 만났던 장교들은 후임을 괴롭히는 태움 대신 선배로서의 롤모델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프리셉터들은 약간의 교육비로, 심지어 무보수로 신규를 맡아 가르친다. 수많은 직장인들과 기능공들은 알겠지만, 자신의 일을 하면서 후임에게 일을 가르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업무적으로, 인격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 된다. 내가 1분이면 뚝딱 해치울 것을 교육생에게 원리부터 방법,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알려줘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프리셉터에게 주어지는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짐짝(?) 같은 신규를 끼고 가르치고 일하다 보면 업무시간이 늘어나고, 일이 끝나고도 남아서 몇시간이고 피드백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프리셉터와 교육생 모두에게 큰 피로와 스트레스가 된다.

쥐꼬리만한, 아니 무보수로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서 후임을 가르치는 프리셉터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교육생의 지식 습득 능력은 프리셉터의 피로도를 가중시킨다. 소위 말하는 'A급' 인재는 드물다. 또한 한 번에 알아듣는 말랑말랑한 뇌의 소유자인지, 아니면 초등학교 때부터 달달 외우는 암기식 뇌인지 살펴봐야 한다. 단순암기식 공부는 임상에서 빛이 바랜다. 학창시절에 4.5점 만점을 받으며 들어온 공부벌레가 오히려 학점 흘리고 다니던 어중이들보다 업무감각이 떨어져서 일을 못할 때가 있다.

 교육생의 성격도 중요하다. 쾌활하고 말붙이기 좋아하는 인싸 성격인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인지, 고집있고 강단이 있는지, 유유부단하고 소심한 지... 프리셉터는 프리셉티의 성향까지 파악하고 고려해야 한다.


직장 세계에 첫 발을 들인 교육생들에게도 큰 스트레스겠지마는, 프리셉터 역시 늘어난 업무 강도와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애석하게도 몇몇 프리셉터는 애꿎은 프리셉티에게 화풀이하게 된다.

프리셉터 중에 최악은 프리셉티가 혼자 두고 뒷방에 들어가 다른 간호사들과 자신의 프리셉티 욕을 하는 사람이다. 남을 깎아내리는 것은 인간성에서부터 실격이다.

 처음부터 싹싹한 사람은 드물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오만하고 멍청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신규 시절을 너무나 쉽게 미화하고 망각하곤 한다.


프리셉터들은 교육생의 독립 후에도 그의 뒷말에 예민해진다.

"야! 너 누구한테 배웠어?!" 만큼 어리석은 말은 없다. 프리셉티의 잘못을 왜 프리셉터에게 연좌죄로 뒤집어 씌우는 걸까? 애꿎은 프리셉터들이 역량 부족으로 같이 까인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남을 깎아내리려 든다.

이런 식으로 학대받은 신규 간호사들은 몇년이 지나면 어느새 태움을 주도하는 꼰대가 되어 있다. 나쁜 인습이 대물림된다.


  위계가 엄격하다는 간호장교들도 함부로 후배들을 태우지 않았거늘, 군대를 가지 않는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똥군기에 차서 졸렬할 지 모르겠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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