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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Nov 19. 2021

선택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의 몫


K.Y.D


 코로나 중환자병동 파견이 끝나고 오랜만에 중환자실로 이브닝 번(14시)으로 출근했을 때 나는 5-6번 두 병상을 맡았다. 5번 자리는 15시 즘에 환자가 수술방에서 나올 예정이었고 다른 한 자리는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기구한 환자였다.


 인계를 마치자 5번 자리로 기다렸다는 듯이 수술방에서 환자를 은 침대가 나오고 인계가 끝난 몇몇 간호사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심전도 전극을 붙이고 동맥관으로 혈액검사를 나가고 입에 꽂은 기관내관(Endotracheal tube)에 기계환기(Ventilator)를 연결한다. 나는 컴퓨터 앞에 서서 차트를 잡고 환자의 이모저모를 훑어본다. 양측 폐와 심막에 꽂힌 세 개의 흉관은 벽의 음압관(wall suction)에 연결되어 음압을 유지한다. 기관내관의 입술로부터의 삽관 길이를 확인하고 기저귀를 채우고 소변줄이 당겨지지 않도록 고정한다. 

 우당탕탕 정리가 끝나고 곧이어 흉부외과 교수가 와서 환자 상태를 살핀다.

 "오늘 익스투 할까?"

 열심히 정리 다 했는데 무슨 청천벽력인지! 전담간호사들과 나는 불안한 눈빛을 마주했다. 

 "수술방서 안좋았다고 들었는데 오늘 그냥 재우면 안되나요?" 전담간호사들의 눈빛을 읽고 내가 능청스레 묻는다.

 "그냥 오늘 푹 재우고 낼 익스투 할게. 세데이션 미다랑 포폴 쓰고."

 그는 3VD(3-vessle disease)라고 알려진, 심장에 혈류를 공급하는 큰 세 개의 혈관이 모두 막혀 관상동맥우회술(CABG)를 하고 나온 환자였다. 틑날 기관발관을 하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티던 그는 사흘째에 병동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남겨진 6번 환자 제임스의 기구한 사연.

 그는 3VD를 진단받아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수술을 거부했다. 러다 어느 날 숨이 차 쓰러진 그는 심정지로 10분 간 소생술을 받고 심장에 VA ECMO를 박은 채 응급으로 CABG 수술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재활하다가 병동으로 전동했지만 기침과 함께 우심실 파열(Rupture)로 응급수술, 다시 ECMO를 꽂고 흉곽이 열린 채로 중환자실에 돌아왔다. 열린 흉곽을 닫는 재수술을 한차례 더 하고 며칠 후 진정약물을 줄였지만 의식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Brain CT와 MR을 찍고 신경과 협진을 하자 허혈성, 저산소성 뇌손상이 의심된다고 한다. 보호자는 그의 적금통장을 깨서 병원비에 보탬하고 싶다고 했지만 의식이 온전치 않아 서류를 쓸 수 없었다.

 양 사타구니엔 ECMO를 꽂았던 상처가 아물지 않아 매일 드레싱을 하고, 열린 흉곽에 농을 빨아들이는 스폰지(Curabag)를 달고 있다. 사지가 묶인 채 혼미한 의식으로 누워있는 그는 우리가 다가갈 때마다 신체보호대를 풀어달라며 애타게 난간에 손등을 두드린다. 

 주말을 맞아 그의 무성한 턱수염을 면도하려고 하자 습관이 배여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젖혀준다. 그럼에도 여섯 번이나 집어뜯은 콧줄(Levin tube) 대신 입으로 물을 먹여보려고 빨대를 입에 대주자 잘근잘근 씹는 걸 보고 흉부외과 교수는 기가막힌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의식이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야속하다.


두 번째 파열(Rupture)은 수술 후에 나타난 드문 후유증이라 배제하더라도,

 만약 3VD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를 잡았더라면? 첫 심정지와 ECMO처치, 응급수술같은 돌발상황과 금전적 부담은 줄었을 수 있다.

 만약 평소 운동을 하고 담배를 멀리하고 건강검진을 잘 챙겼더라면?...


- 항상 우리는 "만약 이랬으면 어땠을까?" 라는 공상을 하며 후회한다.



 

같은 질환으로 수술했지만 운명이 엇갈린 기가막힌 두 환자의 사연을 하소연 할 데 없어 어머니께 말해본다. 

인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당신께선 주저없이 말해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인생이라 일러주신다.

내가 고등학교의 마지막 중간 시험을 치르고 문장가의 길을 걷겠다 했을 때 뜯어말리고 간호사가 되라고 밀어주신 당신께서 새삼스레 나에게 반문한다. 

"네 성격에 시간에 쫒겨서 글을 쓸 수 있니?"


 만약 내가 고집을 부려 작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체계적인 커리큘럼의 작문법을 배웠을 지 모르지만, 점점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볼 품 없는 내 글을 팔러 언론사며 웹사이트 등 이리저리 찔러보고는 현실의 높은 벽에 좌절했을 것이다.

 반면에 학창 시절 반항하고 미적지근하게 놀고 재미없는 실습시간을 어떻게든 때웠던 내가 간호사라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부담없는 저렴한 취미로 글을 쓰고 있으니. 선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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