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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기행

어서오렴 금덩아

by 섀도우

대학원 2학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월의 어느날, 우리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1트만에 엄마 뱃속에 딱하니 바로 붙어버린 이녀석, 대견하다.

하루하루 아내의 배가 불러오는 것이 신기하고 아기의 150회 두근거리는 심박수가 더욱 신기하다.

오개월 즘 되니 태동이 시작됐는데 이녀석, 우릴 닮아 야행성인지 새벽 세 시만 되면 엄마의 배를 발로 차는 게 아닌가. 물론 아내도 올빼미라 새벽 세시까지 잠을 안 자긴 한다마는, 어쩔 때는 배가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몰캉이는 게 보인다.


대학원 수업과 시험과 과제에 치이고 일에 치이면서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나름 사진을 많이 남겼다면 남겼지만 만삭이 되도록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들 돈들여 스튜디오에서 찍고 배사진을 찍던데 우리는 소박하게 집에서 찍기로 했다.


출산예정일을 한달을 앞두고 지인 결혼식에 다녀온 뒤 우리는 미루고 미뤄왔던 DIY 만삭 사진을 찍었다.

코O인형 트O트랩과 싸O벡스 홍보대사가 돼버린 것 같지만 아무렴,

유아차 빼고 큼직한 것들은 다 준비했다고 우리는 즐거워했다.

이때 세차를 맡겼어야 했는데...


예정일 21일을 앞둔 금요일, 우리는 수영장에서 기념사진을 더 찍었다.

원래 수영장은 촬영이 제한되지만 개인강습 시간으로 우리 둘만 있었고 제 아이마냥 흡족해하는 강사 선생님이 오밀조밀 만들어 촬영을 해주셨다.

만삭의 아내는 설렁설렁 물장구를 치고 남편은 스파르타 식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거 아닌가...

"다음주에 오면 마저 찍어줄게요~"

아내는 왠지 다음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수영이 끝나고 우리는 처가댁 근처 한식뷔페 식당에서 장모님과 셋이 잔뜩 먹고 소화를 시킬 겸 간단히 장을 봤다. 구운 캐슈넛 너무 맛있어. 요즘 롯데마트 감다살, 온갖 향신료와 취향저격 상품들을 저렴하게 내놓는다.


그리고 다음날.

양수가 터졌다. 예정일 20일 전.

새벽 5시 이슬이 맺혀서 병원에 연락했고 진통이 심해지면 입원하라고 해서 오전 외래에 입원하기로 했다.

나는 아침 근무여서 출근했다가 10시 좀 넘어서 경부가 2cm정도 열렸다는 연락을 듣고 급하게 수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반차를 썼다.

내 근무 대신 동원당한 선생님께 미안할 다름... 나중에 맛난 거 사드릴게요.


열한 시 - 내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양가 가족분들께 이 상황을 말씀드리고 아내는 라마즈 호흡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시작한다. 아내의 피검사 상 INR수치가 낮아서 척추 무통주사를 맞을 수가 없어 온전히 그대로 진통을 겪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유독 진통을 느끼고 입실한 산모들이 많았는데 다들 무통주사를 맞았는지 분만실에 아내의 신음소리만 울린다.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면 가족분만실 밖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린다.


십분 이십분 삼십분... 자궁 경부가 1cm씩 늘어날 때마다 진통 주기가 짧아진다. 이내 우리는 가족분만실로 자리를 옮겼다. 가족분만실에 쪼그려 앉아 아내의 손을 잡아주다 바깥으로 나와 기다리기를 한시간, 두시간... 잠시 기다려달라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아내의 비명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오며 황급히 간호사와 다른 닥터가 내려온다. 요란한 기계를 들고 들어가는 것이 베큠으로 아이를 꺼내려는 것 같더니

"아버님 들어오세요"

아기 울음소리에 후다닥 분만실에 들어가니 해탈한 아내의 얼굴과 - 세상에 나를 똑 닮은, 태지에 절은 뒤통수가 꼴뚜기로 솟아오른 핏덩이가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아버지들만이 누린다는 탯줄 커팅식을 마치고 아이는 목욕재개하러 떠나고, 의사는 아내의 회음부절개 부위를 꿰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통주사 없이 전근대식 하드코어 진통을 다 겪고 순산한 아내는 세상 후련한 표정이었다. 옥시토신을 마저 맞고 오로 기저귀를 갈아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녁 면회 시간이 왔다.

급하게 오느라 기저귀가 없어 일 층 노란색 기업형 슈퍼마켓에서 기저귀를 사온다. 아가는 부모의 걱정과 달리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37주 1일, 어머니는 내가 2주 일찍 태어났다고 했다.

아빠 닮아서 일찍 태어난 건지, 어머니 힘들지 말라고 쪼꼬미로 태어난 건지, 2주 뒤 아빠 대학원 시험 있는 거 알고 일찍 밖으로 나온건지 모를 금덩아, 무럭무럭 자라자.


임신에서 출산이라는 큰 언덕길, 여기까지 오는 데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에 감사를 느낀다. 임산부에게 고기 한 판 더 챙겨주는 샤브샤브 식당, 고등어 한 손 더 구워주는 백반집 같은 가게들의 정성에 우리는 힘을 받았다.

모성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남자로서 임산부를 대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끈끈한 유대감, 연대감을 보곤 경외감이 들고 감탄하게 된다. 모성간호학에서 보던 딱딱한 텍스트와 달리 가임 여성들은 자신의 출산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한다. 임산부의 배는 축복이자 축복을 전도하는 토템으로 보인다. 아내의 만지며 감탄하는 누군가의 어머니를 보면 우리도 덩달아 따라 웃게 된다. 아내의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를 갖고싶다고 소원을 비는 여인에게 황새가 새 생명을 물어다 주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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