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지어올린 성은 한꺼번에 무너진다.
요즘 회사들이 자사의 앱을 슈퍼앱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슈퍼앱이란 자사의 핵심 서비스와 연계될 수 있는 다른 서비스들을 핵심 서비스와 함께 모조리 합쳐 놓은 앱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T는 구 카카오택시의 택시 호출 서비스를 중심으로 바이크, 대리, 항공 등등의 기능으로 확장되었고, 배민은 이제 음식 배달 뿐 아니라 마트도 있고 문구도 있고 꽃배달도 한다.
회사들이 이렇게 슈퍼앱을 외치는 이유는, 핵심 서비스의 버티컬 성장이 다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UX를 위해 버티컬 성장에 더 투자하기에는 이제 가성비가 안나오는 지경에 다다랐기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자 이를 횡적 성장으로 커버하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근데 슈퍼맨이 되기 어려운 것처럼, 슈퍼앱이 되는 건 정말 힘들고, 보통은 안좋은 결정이다.
1. UX 문제
슈퍼앱은 보통 슈퍼-UX Friendly하지 않다. 버튼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뎁스 하나가 두 개가 되니 기본적으로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 목적이 고객의 요구가 아니라 사업의 확장에 있는 경우는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슬랙이 프로덕트를 만들다보니 음성채팅을 붙이고, 화상채팅을 붙이고, 캘린더와 연동을 하는 부분은 고객의 행동과 맞닿아 있고 자연스럽다. 반면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이 쇼핑기능을 탭에 추가하는 것은 고객의 요구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순전히 트래픽을 빌려와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의도가 주가 된다. 그리고 '걸리적거리게' 느껴진다.
그리고 횡으로 붙는 서비스들은 홀로서기가 힘들기 때문에 횡으로 붙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상 동일 카테고리의 더 나은 제품에게 대체된다. 쿠팡이 있는데 왜 카카오쇼핑을 쓰겠는가?
2. 플랫폼 문제
플랫폼에서 흔히 네트워크의 규모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네트워크의 퀄리티 또한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 퀄리티란, 퀄리티 컨트롤을 떠나서, 서로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트래픽의 밀도를 말한다. 서로 다른 프로덕트의 트래픽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쇼핑을 하기 위한 트래픽과 게임을 하고자 하는 트래픽은 다르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서로 다른 트래픽이 서로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했다면 카카오 쇼핑은 벌써 전국을 휩쓸어야 했다.
서로 성격이 다른 네트워크를 억지로 겹쳐놓았을 때는 문제가 전체적으로 옅게 생긴다. 마치 쌀에 모래가 살짝 섞여들어간 것과 같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쌀가마를 통째로 가져다 버리기로 결심한다.
3. 인식 문제
브랜드 측면에서 볼 때, 슈퍼앱이라고 하는 개념은 브랜드의 확장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망한 결과가 나오기 쉽고 본진에도 스플래시 데미지가 터지기 쉬운 바로 그것이 브랜드 확장이다. 우리의 뇌는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원하고, 구체적인 것이 머릿속에 더 잘 각인된다. "택시는 카카오택시" "자동차 대여는 쏘카" 같은 구체적인 개념을 한 단계 추상화해서 "이동은 카카오T"라고 하는 건 와닿지 않는다. 고객은 어떤 문제를 인식했을 때 반사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방법만을 시도하기 때문에 인식에서 멀어지는 것은 큰 문제다.
위챗이 슈퍼앱이 된 것은 일상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커뮤니케이션과 결제를 누구보다 먼저 효과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지 슈퍼앱 전략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슈퍼앱을 외치는 어른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결론은 다시 고객 중심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