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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익스피어 Jun 22. 2024

[제단글] 고시, 연애, 그리고 용기

앱 제시단어 : 라이센스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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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무렵.


법학과 전공이었던 나는 고시를 준비했지만 결국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고시'에 대해서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덤벼들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아마 난 고시를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예 법학과를 지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라이센스를 받고 이를 평생 사용하며 살 수도 있는, 어찌 보면 어느 정도 보장된 인생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향과는 안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고시를 패스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나의 성향'을 논하는 것은 '저 포도는 실거야' 라고 외치는 여우의 모습이긴 하지만.


20대의 나에게 있어서 고시에 실패한 것 이외에 가장 충격적인 경험은 몇 번에 걸친 연애의 실패였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연애를 대학교를 가서, 그것도 군에 다녀와서 24세에 시작했던 나는 아직 경험도 없고 많이 미숙한 남성이었다. 아마도, 여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연애에 있어서 남성의 롤플레잉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 경험치가 없었기에 그리 매력적인 연애의 대상은 아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번의 고백 실패를 경험하며 나름의 경험치를 쌓아갔고, 실제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는 3년 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걸 경험했다. 그리고, 결국 이별을 하는 시간이 다가왔는데, 그 시간이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첫 여친'을 '이별의 아픔을 알려주는 존재'로 규정했다. 그만큼 헤어짐은 그 연애에 있어서 가장 임팩트 있는 기억이었다. 마치, 그 사람은 이제 내 인생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3년 동안, 나는 연애라는 것의 변화무쌍함에 놀랐다. 그리고, 국영수 보다도 훨씬 중요할 수 있는 일인데 연애를 가르쳐 주는 학원이나 책을 잘 볼 수 없었다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초중고 학창시절에는 연애는 금기시 되었었고 그나마 대학을 가서야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책이나 학원이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만큼 연애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연애에 대해서 생각했던 또 하나의 재미난 기억은, 연애 자체는 연애의 경험으로 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이지?


연애라는 경험을 통해 상대를 더 이해하고 상대방을 좀더 배려하고 나 자신의 찌질한 모습에 대해서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되기는 하는데, 그 경험치가 폭증하는 때는 '이별'을 경험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큼 아프고, 그만큼 반성하는 경험은 얻기 힘들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간적 성숙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연애 라기 보다는 '차이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가끔 볼 수 있는 유형들, 그러니까 이별의 아픔을 다른 사랑으로 치환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그 이별의 아픔을 오롯이 견딘 사람들에 비해 얻는 게 적을 거라고 본 것이다.


말하자면, '차이는 경험', 그것도 대차게 차이는 경험을 한 사람은 일종의 '연애 라이센스'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상상했었다. 나는 그럼 그 연애 라이센스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을까? 물론 절대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20대에 경험한 고시의 실패, 연애의 실패에서 얻었던 가장 귀중한 경험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고시를 패스한 사람이 늘어날 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마상이 없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5년이란 시간 동안 공부했지만 결국 결과가 좋지 못했다. 5년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자책했지만, 그 당시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했기에 나로선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결국, 고시를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돌아보면 잘한 결정이었다. 내가 벌어온 돈으로 집의 위기는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도 극복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헤어짐이 그토록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난 이후, 일정 기간 동안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100% 주지 않는 등의 무슨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해법은 성향상 나에게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것은 그땐 잘 몰랐지만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20대에 배웠던 '용기'라는 미덕은 그 이후 세상을 살면서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17:1의 전설적인 싸움에서만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일에 용기는 필요했다.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라이센스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중 가장 필요한 라이센스는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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