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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익스피어 Jun 23. 2024

[제단글] 가르치는 이의 마음가짐

앱 제시단어 : 피아노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피아노

- 그림 : chat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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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가장 싫었던 순간 중 하나가 피아노 과외를 받는 것이었다.


우리 집이 그렇게 잘 사는 집은 아니었건만, 부모님은 나와 내 여동생에게 피아노 과외를 시켰다. 피아노 학원을 다녀도 되었을텐데 왜 과외를 선택해서 선생님을 집으로 불렀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3년, 내 여동생은 4년 정도의 기간 동안 피아노 과외를 받았다.


내가 피아노 과외를 싫어했던 이유는 그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 무서웠던(!) 여자 선생님은 화장도 상당히 짙게 하고 다녔는데, 그 때문인지 안그래도 앙칼진 목소리 때문에 인상이 안좋았던 그 선생님의 인상이 더욱 터프하게 보였다.


그리고, 터프하게 보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터프했다. 내가 숙제를 덜 하거나 피아노를 잘 못치는 날에는 내 손가락을 플라스틱 자(!)로 후려쳤다. 어린 내가 느끼기엔 정말 아팠다. 하지만, 자로 맞았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 보다도, 그렇게까지 혼나가며 이 피아노 라는 것을 배워야 하는지 정말 의문이었다.


피아노를 더이상 배우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피아노의 근처도 가지 않았던 걸 보면 그 당시의 나는 그 선생님께 상당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쉬운 점은 뭐였냐 하면, 어느 순간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나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곡이 생겼고 그당시 유행했던 이루마씨나 김광민씨,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들을 많이 들었으며, 가끔은 나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거였다.


그 피아노 선생님 덕분에 피아노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거꾸로 그렇게 좋아할 수 있었던 피아노를 그 분 때문에 상당 기간 멀리 했었다는 아쉬움을 지워버릴 수 없었던 것.


그 분의 가르치는 방법이 좋은 방법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난 솔직히 피아노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에도 피아노 선생님들이 자나 회초리 같은 것들로 학생의 손가락을 때려가며 가르치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이제 좀 알 것 같다. 특히, 나의 저 위와 같은 경험을 생각해 볼때 말이다. 그건 어린 아이든 다 큰 성인이든 똑같을 것이다.


처음 배움을 시작하는 그 누군가는 그 분야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의 흥미가 생겨서 좀더 배워볼 생각이 든 것에 불과하다. 그런 뉴비에게 적당한 정도의 가르침과 적당한 연습을 적절하게 섞어서 그의 흥미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비율 조절에 실패해서 뉴비의 흥미가 꺾여 버리면 그는 더이상 배울 의지가 사라진다. 실력의 향상이 없다면 그 역시 재미는 사라진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내가 어린 시절의 그 피아노 선생님은 적어도 나라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 있어 실패한 것이 맞다.

아들 녀석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니, 나로선 내 아들을 떠올리게 된다. 올해로 7살. 2018년에 태어난 그 녀석은 부모님 말도 잘 듣는 편이고 생떼를 쓰거나 하지도 않는, 육아 난이도 중하 정도에 해당하는 착한 녀석이다.


그런데, 가족이다 보니 매일 녀석과 함께 하며 가르쳐야 할 것들이 참 많다. 피아노 선생님은 피아노만 가르치면 되지만, 나와 아내는 부모이다 보니 삶의 대부분의 일들이 모두 가르침의 대상이 된다. 물론, 우리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에게 기본적인 행동들에 대해 가르쳐야만 한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내가 저 피아노 선생님 처럼 행동한 적은 없었을까? 아묻따 막무가내로 녀석을 다그치거나 가르치려 했던 적은 없을까? 아예 안그랬다고는 못하겠다. 부모도 인간이니 만큼 때로는 화를 내고 짜증도 내면서 뭐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피아노가 싫어졌던 그때의 감정이 완벽히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녀석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물론, 아들이 뭔가 잘못했을 때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혼내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피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세상에 아직 뉴비인 이 녀석의 마음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무언가를 싫어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말 어려운 것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인가 보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식이 되면 화를 내지 않고는 못배기는 부모가 그렇게 많다고 하지 않는가.


저 녀석이 크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아빠가 이런 고민을 하며 자기를 키웠다는 걸 알기는 할까? 흠... 브런치 플랫폼이 계속 살아있어서 이 글을 언젠가 아들에게 보여줄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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