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영혼의 외침.

by 다정한햇살


" 자기 감정을 잘 알고 그것과 친구가 되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를 잘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하나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떠오르는 감정들에 이름을 지어주고, 길들이고, 있는 그대로 받아안을 때,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며 깊은 영성을 갖게 됩니다."

- 사려깊은수다, 박정은


책상을 청소했다. 미니멀을 꿈꾸지만, 공간은 늘 포화상태다. 그 포화 상태를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때, 그때 청소를 한다. 책만 치워도 깨끗한 책상이 될 텐데, 그 단순한 명제가 어렵다. 나의 청소 스타일은 피곤한 스타일이다. 꼭 눈에 잘 안 보이는 구석진 곳을 먼저 공략한다. 실컷 청소하고는 티가 나지 않아서 허무할 수 있는. 그래서 더 청소하기 싫어지는. 전략적이지 못 한 스타일이다.


가장 구석에 있는 흰색 바구니를 꺼냈다. 다양한 스티커, 빽빽하게 꽂혀 있는 편지들, 그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파란색 파우치까지. 파우치에 뭘 넣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퍼를 열었다. 맙소사. 작년 일기장이 나온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느낌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청소는 물 건너갔다.' 분명 내가 쓴 일기인데, 타인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내용이 왜 이리 생경할까.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만약 누군가 이 일기장을 본다면, 생각만 해도 지구 땅에서 사라지고 싶다.


스무 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 이유는 단 하나다. 살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깊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감정들이 나를 삼킬 때가 많았다. 이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일기를 쓰면서 숨통이 트였다. 검열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쏟아냈다. 내 안에 오물을 토해내는 느낌이었다.


그 뒤 10년 넘게 일기를 쓰고, 감정과 내면에 관한 책을 읽었다.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주는 감정들을 극복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애를 쓸수록 허무함과 슬픔이 찾아왔다. 그 감정들이 결국 극복되지 않았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불청객으로 불쑥불쑥 찾아와 내면을 들쑤시고 다녔다.


감정, 영혼의 외침이란 책은 이런 내 삶의 맥락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이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감정들을, 숨겨진 영적 성숙의 길이라고 소개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숨겨진 영적 성숙의 길이라니. 책 표지 뒤편의 놀라운 문장이 있다.


" 우리는 감정의 난폭한 풍랑 속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다.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왜 우리는 감정을 무시하거나 싸워 진압하려고만 할까? 비이성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번민하는 것이, 마음에 병이나 죄나 상처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과 충돌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영혼의 울부짖음이다. "

- 감정 영혼의 외침, 댄 알렌더


책을 만나고 감정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했다. 귀 기울여야 할 영혼의 울부짖음으로 대했다.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기로 했다.그뒤 여전히 감정의 난폭한 풍랑 속에서 파도타기를 한다. 이 반복이 지겨울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는다. 하나하나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다. 요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예전보다 밝고,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스스로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느낀다.


여전히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뭐 어떤가. 나를 알아가고, 잘 이해하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겠다. 이런 여정을 통해 신의 거룩한 성품으로 빚어진다고 생각하니,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


abd19dcdb530eb30fb3d1f844db4c03e.jpg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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