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이 바다가 들어온 공간에 무수히 작은 조각으로 흩어지는 오후 햇살이 가득하다. 바람은 선착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산 허리로 휘적대며 사라진다. 스치는 바람과 냄새가 다르지만 익숙한 느낌이다. 생명체의 기원은 바다라는데, 유전자 어딘가에 태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인가? 희미한 흔적을 더듬어 감각의 촉수들이 살아난다. 오동도가 내려다 보이는 숙소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나 도회지에서 부딪히는 인파와는 움직임이 다르고 웃음과 파동이 다르다. 업무로 왔어도 일은 그냥 잊어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해초처럼 흔들리며 나는 남도의 항구가 지어내는 마법 가운데 서 있다.
물이 아름다워 여수(麗水)라 했다는데 물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물을 담는 자연, 굽이진 포구와 자연스럽게 둥지를 튼 바위, 먼 바다를 내려다보는 듬직한 산들이 친근하다. 바닷바람을 오래 맞아온 나무와 숲은 여느 산의 모습과는 다른 그윽한 눈길로 섬과 바다를 바라보며 꿈에 잠겨 있다. 가만 보면 여수는 흩어진 도시다. 산자락에서는 나무와 바위 사이로, 바닷가로 내려오면 포구의 굴곡과 무심한 파도에 도시는 흩어져 있다. 듬성듬성 자리 잡은 아파트와 그만 그만한 건물들이 타원형 만을 돌며 굽이진 길을 따라 이어지듯 끊긴다. 크고 작은 만(灣)을 건너뛰는 산과 산, 섬과 섬, 조각 난 바다와 먼 바다, 자연은 저렇게 흩어 놓고 여유롭다. 평원에 군락으로 흩어진 진달래를 보는 아련함과 그리움이 흩어진 사이사이에서 한 움큼씩 자란다. 그 경계에서 남도의 정취가 피어난다.
물이 좋고 함께하는 자연이 정겨운데 사람이 좋지 않을 수 없다. 삼십여 년 여수에 살고 있는 친구는 구수한 말투에 항상 표정이 밝다. 비슷한 또래에 비해 너 댓은 젊어 보인다. 어릴 적 그대로인 머리숱과 살짝 그을린 건강한 모습은 바다처럼 여전하다. 표본 수가 적어 과학적인 결론일 수는 없겠지만,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런 공간에 젖어 살다 보면 사람도 좋아질 거란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름다운 풍광에 번잡하지 않은 지방도시, 고속열차로 서울에서도 세 시간이면 닿는 여수를 이제야 찾았구나. 길게 머물며 푹 젖어 지내다가 석양이 좋은 날 빨간 등대 우체통에 손 편지 하나하나 부치고 싶은 곳이다.
흩어진 도시를 잇는 것은 역시 사람의 일이다. 산과 돌산을 이으며 포구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섬과 육지를 잇는 연육교 그리고 여러 갈래로 흐르는 굽이진 길을 오래 바라본다. 연결을 따라 사람들도 쉼 없이 흐른다. 이음은 흩어짐의 아름다움 위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같은 공간에서 흩어짐과 이음이 같이하며 어우러진 미(美)다. 연결은 새로움을 잉태하기에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저 공간에 새로운 이음을 설계하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나무가 이어져 아름다운 집이 되고 사람과 사람은 이어져 큰 사랑과 생각을 만든다. 다른 생각이 이어지며 예술이 되고 명작이 된다. 흩어짐과 이음이 없는 예술 작품이 있을까? 흩어짐과 이어짐, 자연과 사람의 의지가 조화를 이룬 공간에서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마지막 햇살이 바다에 스며들고 어둠은 주변 산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낮 동안 바닷바람이 부지런히 오르던 그 산이고 숲이다. 이른 새벽부터 어둠의 조각들을 모아 바람은 쉼 없이 그 무더기를 날라 숲에 간직했구나. 산사태처럼 순식간에 어둠이 깊어지면 이음을 따라 불빛은 색색으로 아름답다. 흩어진 아름다움이 낮의 모습이라면 이음의 아름다움은 밤이 제격이다. 화려하게 재 탄생하는 도시를 놀라운 눈으로 보며, 긴 호흡으로 바다가 흔들리고 있다. 환해지는 조명으로 빛의 길이 넓어지고 섬과 육지의 연결은 견고해진다. 동백을 가득 실은 섬이 천천히 다가온다. 섬이 배가 되는 순간이다. 빨간 등대를 지나며 긴 뱃고동이 물 무늬를 만들며 천천히 포구에 퍼진다. 소리가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이음, 포구가 그대로 하늘을 향한 자연 나팔이 된다. 여수(麗水), 그 공간에서 바다, 섬, 육지, 사람 그리고 너와 나는 끝없이 이어지고 밤새 꿈을 꾸며 아름답다.
이 산은(李山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