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그 사람의 향기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가 있다. 바쁜 한 주 보내고 조금은 지친 상태일 때, 업무의 연장이기보다는 가볍게 풀어내야 할 일이 스칠 때, 혹은 상대나 스스로에게 작은 여유와 위로를 전하고 싶을 때다. 고만고만한 식당과 호프집들이 모인 곳에 불빛이 환해지고 있다. 골목길을 면한 창가에 빈자리 하나가 반갑다. 이렇게 공간과 사람은 예기치 않은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꽤 많다. 적절한 소란은 좋은 호프집의 중요한 요소일 것, 비싼 인테리어보다 가치 있고 효과적인 자원이 된다. 거품이 살아 움직이며 혀끝을 유혹하는 첫 한 모금을 크게 들이켠다. 생각했던 그 맛을 확인할 때, 그것은 잔잔한 만족이고 기쁨이다. 지금 이 맛은 맥주 자체의 맛일까 맥주를 마시는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 내는 맛일까? 분위기와 어울리며 내 상상이 만들어 내는 몫도 작지 않을 것이다. 기대와 상상이 맛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고 창가에 불빛이 성큼 밝아졌다. 그때 뒤편에서 들리는 말 한마디가 나를 흔든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해. 왜 죽이는 말들을 하지?” 거나하게 술에 취한 목소리지만 출렁이는 소음을 가르는 울림이 있다. 흐린 날 어스름에 스치던 마른번개 같은, 선명 하진 않아도 잔상은 분명하다. 사람들의 대화와 음악 소리에 이어지는 말들은 묻히고 말았지만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는 한 마디가 공간에 맴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고 있는가? 그런 말이 오가는 공간과 흐르는 사회를 생각한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술의 향기는 천리를, 그리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라고 한다. 가끔 음미하는 글귀다. 사람의 향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일까? 행동이나 태도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하나가 그 사람의 말이지 않을까? 잘 차려 입고 건실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가 던진 한마디 말이 거칠고 경박하다면 이미지는 순간 사라지고 향기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남루한 모습일지라도 한 마디 말이 상황을 아우르며 울림을 가진 무게와 깊이로 표현된다면 겉모습과 상관없이 그 사람만의 향은 피어날 것이다. 얼마 전 국제 테니스 대회의 한 장면이 스친다. 혼신의 힘을 다해 긴 시간 치열하게 경쟁한 후 진정으로 상대를 존경하고 격려하는 두 선수의 말은 짧지만 경기 이상의 감동이었다. 1-2분의 말이 3-4 시간 혈투의 감동을 재현한다. 말의 힘이다. 생각이 다를지라도 상대를 인정하면서 다른 차원의 경쟁을 할 수는 없는가? 그런 지혜를 구할 일이다. 그 지혜가 사람의 향기가 된다.
현란한 말들이 난무한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그런 말들로 스스로 강하고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다. 독한 말, 날카로운 말로 사람이 강한 것은 아니다. 강한 체하지만 기실 가장 약하고 비겁할 수도 있다. 자기 말의 무게와 에너지를 조금이라고 안다면 그렇게 내두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또한 무책임하며 쉽게 말을 바꾸기도 한다. 자기 말에 무게나 에너지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기에 쉽게 휘두르고 번복하는 것이리라. 진정한 무술인은 자기 힘을 알기에 손이나 주먹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말도 마찬가지다. 자기 말의 에너지를 알고 말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면 그렇게 경박하게 날카롭게 휘두를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갈등을 부르는 경박하고 무책임한 말들에 노출된 사람들이 지쳐가는 혼돈의 시대, 사람을 살리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인정과 격려의 말, 감사와 사랑의 말, 긍정과 희망의 말… 말이 그 사람의 얼이며 인격이다.
여린 줄기에 살짝 흔들리는 난 꽃, 생각만으로 은은한 향기가 흐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스치는 향이 후각을 넘어 시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가느다란 한 줄기에서 만들어 내는 향기와 감성이 저러할 진데,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향기는 얼마나 깊고 클 것인가? 사람을 살리는 말들이 연결되며 사람의 향기가 흐르는 공간에서 사람과 사회는 건강할 것이다. 상상이 맥주 맛을 더 맛깔스럽게 만들며 구체화되듯, 살리는 말과 사람의 향기를 상상할 때 그것은 조금씩 구체화되지 않을까?
이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