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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Jan 05. 2019

어떤 눈길

한 사람의 전부일 수 있는

가는 비가 있는 아침이다. 무겁지 않은 구름에 하늘은 비교적 밝아 큰 비는 아닐 듯하다.   


언제부터 같이하고 싶었던 활동이다. 몸을 가누기 어려운 뇌성마비 아이들이 사는 곳에 간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처음 가는 곳, 하남과 송파의 경계에 있다.  멀리 돌아보면 적당한 높이의 산들이 푸근하게 감싸고 있어 평화롭기만 한데,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이는 풍경은 그렇게 평화스럽지만은 않다.  근처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경계를 표시하는 붉은 페인트와 토지 수용을 반대하는 자극적인 표현을 담은 검은색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 있다. 강한 어투에 매우 거친 표현들이지만 개발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힘이 별로 느껴지진 않는다. 찢어진 천에 색 바랜 날린 필체의 글자들을 지나친다. 그 위에 비가 굵어지고 있었다. 생경한 풍경에 눈이 팔려 있는데 앞을 가로지른 언덕에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고 동굴 입구 같은 굴다리가 나타난다.  굴다리 위로 높이 지나는 도로에는 커다란 트럭들이 오가고 머리만 보이는 차들도 많다.  도로를 지탱하는 다리라기보다는 도로가 작은 틈을 열어준 것 같다. 굴다리를 지나니 길은 더 좁아진다. 산자락으로 오르는 길, 앞에서 오는 차가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아갔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좁고 쉽지 않았다. 


산그늘이 내릴 만한 경계를 지나니 허름한 집이 몇 채 나타난다. 이곳에는 굴다리 건너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차분함이 있다. 차에서 내리며 어떤 안도감을 느낀다. 오면서 긴장했나 보다.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개발을 둘러싼 다툼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산 기운이 포근하게 내려 서성이고 있었고 주위 밭에서 올라오는 고추며 깻잎 그리고 열무와 오이들 그 생명의 기운이 오른다. 


원장님이 반갑게 맞는다. 일을 하다 나오시는 편한 차림에 얼굴엔 얕은 땀이 배어 있다.  인자하지만 참 부지런해 보이고 정이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다. 거실에 들어서니 목욕 봉사를 나온 사람들이 아이들 목욕을 거의 마친 시간이다. 보기에도 깔끔해진 아이들 뒤로 땀에 흠뻑 젖은 분들이 보인다. 고정으로 주말 봉사하는 분들이라 했다. 십 수년을 빠지지 않고 해 오신 분도 있었다. 이름 모를 이웃들이지만 존경스럽고 대단하신 분들이다. 간단히 인사 나누고 바로 내 일을 찾아 점심 준비를 돕는다. 삶은 닭고기를 잘게 부수고 푹 삶은 면도 가위로 잘게 자른다. 이가 좋은 않은 아이들이 먹기 쉽게 하는 것이다. 두어 시간의 준비를 끝내고 스무 남짓한 봉사자들이 아이들을 한둘씩 맡아 점심을 먹인다. 몸을 가누기 힘든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성장을 멈춘 몸, 뒤틀리는 목과 손목의 아이들이 누워있다. 작은 손이 더 작게 느껴지는 아이들, 서른을 넘었다는데 10살을 전후로 보인다. 몸집도 그렇고 전체에서 느껴지는 모습도 그렇다.  40여 년을 누워있는 아이 (?)도 있다. 몸집이나 모습은 나이를 완전히 비껴갔는데 치아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잘게 부순 음식 첫 숟가락을 작게 해서 아이 입으로 가져간다.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서툴기도 하겠다. 누워 받아먹는 아이가 불편하지 않으면서 흘리지 않게 잘 먹여보려도 애쓰고 있었다. 자칫 식도로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보다 더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아~ 하고 입을 벌려 봐, 그래 그래 잘했어요.” 수저를 넣을 땐 내 입술도 아마 같은 모양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첫술을 잘 해결하고 작은 자신감을 갖는 그때 날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을 느꼈다.  


담백하고 깨끗해서 바라보는 사람도 순간 그렇게 만드는 눈길.  40여 년 참 다른 시간 다른 세월을 보낸 사람이다. 살아온 방식도 너무 달랐다. 말을 주고받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몸을 뒤집거나 이동하지도 못하고 그저 같은 자리에서 보이는 사람들과 보이는 사물들을 보며 지냈다. 사람들이 바뀌며 하루가 가고 목욕을 하고 나면 일주일이 가고 창가에 비가 치거나 눈이 내리며 계절이 지나갔다.  손놀림마저도 잃어 가고 가장 자유로운 것은 눈이었을 것이다. 시간의 경험과 기억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이 눈이다. 그 눈과 눈길은 조용하지만 따뜻하고 깊이가 있었다. 한 사람 전부일 수도 있는 그 눈길에 형언하지 못할 느낌과 위로를 얻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들어주고 모든 말을 하는 눈길이다. 위로하는 눈길이고 감사하는 눈길이었다. 보살핌을 받아오며 지나친 많은 봉사자들에게 잔잔한 힘을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머무는 곳을 나서는데 비가 그치고 어렴풋이 해가 얼굴을 내민다. 머루가 익어가는 작은 마당을 걸어 나온다. 어떤 뜻이 있어 이런 아픔이 있는가에 대한 감상적인 생각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많은 봉사자들이 있다는 현실적인 믿음과 봉사자들에게 건네 졌을 그 담백한 눈길을 생각한다. 좁은 길을 어렵게 돌아 나오며 ‘한 눈길이 그 사람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루처럼 커지고 있었다. 산 기운 포근한 끝자락에 그런 아이들과 눈길들이 있었다. 


글/ 이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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