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산은 Jan 05. 2019

의자가 있는 풍경

유난히 의자를 좋아한다.


어쩌면 호 불호를 넘어선 대상에 느끼는 각별한 끌림이다.  의자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떤 친밀함이 스물스물 피어난다.  해 지는 무렵 산을 내려오다 나무들 사이로 연기 오르는 초가를 보는 느낌이다.  사물과의 깊이 있는 교감이다. 어떤 것과도 다른 파장의 주파수를 가진 가진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 꼭 실물 의자가 아니어도 그냥 그림으로도 풍경으로도 모형으로도 그 친밀함은 남다르다. 언제부터인가 딱히 집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돌아보면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기억들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90년대 초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유학시절 일이다.  한 동안 식탁 없이 종이 박스를 뒤집어 밥상으로 삼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마냥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 식탁이 필요해서 먼저 온 선배가 알려준 곳을 찾아갔다. 서툰 손 글씨와 화살 표시 안내를 따라가니 집 앞 작은 잔디밭과 주차장 옆 공터에 진열한 물건들이 있었다. 이사하는 사람이거나 주기적으로 집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중고 제품들을 파는 ‘garage sale-창고 정리’이었다.  물건들은 거의 1-5불이고 비싼 것도 20불 전후의 가격이었다. 물건들이 제법 많았는데, 마침 찾았던 적절한 크기의 식탁도 있었다. 그리고 한 액자를 보았다. 액자가 작지 않은 그림만 15호쯤 보이는 크기였다. 호숫가에 빈 의자가 있는 흑백 톤의 그림을 담은 액자를 보는 순간 그 빈 의자에 끌려 그림을 사 들고 왔던 기억이 있다. 벌써 오래 전이어서 세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수중에 가진 돈이 넉넉지 않았던 것 같다.  식탁과 액자 중 뭘 사나 망설이다 결국 의자가 있는 그림을 사 들고 온 것이다.  생활에 필요하기는 당장 식탁이 우선이었을 법한데 의자가 주는 끌림에 그만 마음이 바뀐 것이다.  그 액자는 그 후 한국으로 건너왔다가 중국과 미국으로 나를 따라 떠돌았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 남향 베란다에 걸려 있다.  베란다 밖은 앞으로 널찍이 펼쳐진 산인데 뒤돌아 보면 그 호수와 빈 의자가 있다.

   

역시 한참 전 이야기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지 오래지 않았을 때 도자기를 배운 적이 있다. 막 기초를 떼자마자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의자다.  다양한 형태의 의자를 머리에 그리고 그림으로 옮겨보고 그것들을 도자기로 빗어내기 시작했다.  그 의자 몇 점은 아직도 내 서재 한 귀퉁이에서 뭔가를 추억하고 있다.  약간은 예술성 있어 보이는 한 작품은 어찌 보면 사람의 몸매를 형상화했는데 가느다란 허리 부분이 소성과정을 견뎌 낼까 저어해 초벌구이만 하고 보관하고 있다.  지난 15년여 다섯 차례 이상 이사하는 동안 그것을 내내 보물처럼 들고 다녔다.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내다 가끔 바라보면 그 느낌이 주는 위안이 적지 않다.  책갈피에서 찾아낸 빛바랜 가족사진 같은 느낌이다.

  

긴 출장에서 돌아온 어느 날 집 안을 둘러보다 의자들에 마음이 머문다.  도자기 의자에 15년 그리고 액자 속 빈 의자에 20년 이상의 세월이 앉아 있다.  기간도 그렇지만 주인을 따라 이어진 그들의 방랑 과정을 보면 전혀 녹녹하지 않은 세월인데 빈 의자가 잘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마루처럼 허물없이 친밀한 느낌인데 사물을 대상으로 긴 시간 이렇듯 살아 있는 감각이 새롭다. 친밀함은 무의식에 점점이 떠 있는 마음의 창에 그 대상이 투영되는 것, 가만 보면 의자는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이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이기도 하다.  그냥 혼자 있어도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자연스러운 모습, 그 빈 의자 주위로 서성이는 내가 있다.  해가 저물고 비스듬히 옆으로 들어오는 석양빛에 호수가 열리고 졸린 의식 속에 의자가 깨어나고 있었다.  


글/이산은



매거진의 이전글 미네소타 공항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