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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Jan 06. 2019

목계나루

연결과 열림의 공간에서...

마음을 끄는 이름이다. 지명이 주는 묘한 매력에 끌려 길에 오른다.


남한강 중상류, 강을 따라 길은 크고 작은 굴곡을 만들며 이어진다. 강과 길은 익숙한 놀이를 하듯 보이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며 교차한다. 작은 샘에서 발원한 물길이 다른 물길을 불러 모아 흐름을 재촉하고 굽이 굽이 산과 골을 지나 호수를 만들고 큰 강이 되었다. 쉼 없이 내려온 물길이 천등산을 등지고 펼쳐진 너른 들을 만나 시나브로 발길 늦춘 그곳에 나루가 있다.

목계 (牧溪) 나루다. 물길을 길러낸다는 뜻인가? 수 백 미터 넘을 너른 강역은 물길을 길러내는 공간으로 제격이다. 크고 작은 물길이 봄볕에 풀어지며 어울려 흐른다. 물 비늘 가득한 큰 강 곁으로 조용한 물길이 각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고, 그 양편에 두툼한 둔덕이 완만하게 펼쳐지다가 꼬리를 들어 강둑 차도로 이어진다. 둔덕을 따라 무수한 발길을 추억하는 크고 작은 돌들이 꿈꾸듯 누워 있다. 몇 마리 물새가 가벼운 바람을 타고 내린다.


한강이 온전히 연결되고 열려 있을 때는 남한강 내륙에 번창했던 수운 물류 요지였다. 물길은 여전한데 배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 선 표지석이 선명하다. ‘목계나루’ 굵게 이름 새긴 돌이 나루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있다. 여주 이포와 양평 두물머리 지나서 팔당, 서울(한양) 그리고 서해를 뱃길로 연결하던 전성기에는 하루 100여 척의 배가 드나들고 정박했다 한다. 내륙과 바다의 산물이 강을 따라 교차하며 물물교환 되던 공간, 색색의 깃발과 황소울음과 생선 냄새가 끊임없이 사람을 끌고 머물게 했을 것이다. 이제 모두 떠난 자리에 표지석은 흔들리는 갈대숲을 내려다보며 홀로 햇살에 키를 키우고 있다.  


가만 보면 바람은 갈대숲에서 나온다. 바람은 갈대의 작은 기재개와 촘촘한 연결이 만들어내는 싱싱한 기운이다. 무수히 이어지는 흔들림이 공간을 메운다. 총각 머리처럼 더부룩한 숱을 가진 갈대는 작은 바람을 출렁이는 모습으로 증폭시킨다. 그것은 오랫동안 품어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몸짓이기도 하다. 조금만 시간을 되감아 내면 거기 온갖 소리가 들리고 돌 하나 하나와 갈대숲 사이사이에서 애틋한 이야기가 살아날 것이다. 비스듬한 언덕에 올라 강, 들, 펼쳐진 갈대숲과 멀리 보이는 산 그리고 꿈속 풍경 같은 창공을 바라본다. 들어오는 배를 기다리던 마음을 떠나는 배를 전송하는 손짓을 언덕은 아직 기억할까?


운송 수단이 발전하며 철도와 차에 밀려 수운 물류는 쇠퇴하였다지만 배가 완전히 사라진 근본적인 원인은 강에 건설된 댐이다. 댐이 건설되고 강은 단절되었다. 온전한 연결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지 못하는 강은 배를 부르거나 품을 수 없었다. 물은 여전히 깊어 배를 띄울 수 있어도 연결되지 않은 강에서 그것은 온전한 배일 수 없었다. 빈 나루에서 배를 띄울 수 없는 물과 강을 오래 바라본다. 어쩌면 배를 띄우는 것은 물이라기보다 연결이 아닐까? 연결은 자체로 힘이고 실체를 넘는 새로운 세계를 잉태한다. 햇살이 서성대는 갈대숲은 그래서 끝없이 저렇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옆에 있는 것이 아닌 깊은 연결을 생각한다. 길과 강, 강과 물, 물과 갈대, 갈대와 바람은 연결되고 살아나고 같이 흐른다. 나루에서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고 사람은 또 자연과 어우러진다. 오래 바라보는 눈길, 시간을 넘나들며 생각은 물결처럼 바람처럼 파동을 만든다. 그 공간에 하나 둘 사람들이 소리 없이 모여든다. 오는 길에는 보지 못한 차들이 갈대숲에 듬성듬성 들어선다. 오후 햇살에 산뜻한 주황, 하얀, 갈색 그리고 파란 텐트가 바람 따라 갈대숲에서 얼굴을 내민다. 꿈속처럼 텐트가 범선 깃발이 되어 흔들거린다. 깃발이 사람들 숫자보다 훨씬 많다. 설치 미술 공간 같은 풍경, 배가 없어도 나루는 영원히 연결이고 열림이다.

                                                                                                     

글/이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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